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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온몸 바친 삶...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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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온몸 바친 삶...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입력
2016.09.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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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81세로 별세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1년 9월 81세로 별세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전히 노동자의 삶이 비정규직 양산, 청년실업, 숨 돌릴 틈 없이 쥐어짜는 노동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에 온 몸을 바친 어머니의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리라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대모 이소선 여사 타계 5주기(3일)를 맞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돌베개)을 낸 민종덕 전 청계노조 위원장은 5일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무산시킨 일을 겪은 뒤 전태일 정신이 40여 년 동안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자 등이 투쟁으로 지킨 것임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출간 취지를 설명했다.

민 전 위원장은 1974년 헌책방의 철 지난 잡지에서 전태일 일기를 접하고 충격을 받아 그 길로 노동운동에 평생 투신한 인물. 잡지에 나온 한 줄 주소를 들고 이 여사를 찾아갔고, 평화시장에 취직해 일하다 청계피복노조의 대의원, 운영위원, 사무장, 지부장 등을 지냈으며 전태일 평전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가 생전 구술과 다양한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이 여사의 삶은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달려온 가시밭길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분신 직후 병원으로 실려와 간신히 숨만 붙은 아들이 남긴 몇 마디 말이 가슴 깊이 파고든 탓이다. “어머니만은 이 아들을 이해할 수 있지요?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뤄 주십시오” “배가 고프다”

이소선 여사가 분신한 전태일의 영정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소선 여사가 분신한 전태일의 영정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종덕씨가 2006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묘역에서 열린 전태일 36주기 추도식에서 이소선 여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민종덕 제공
민종덕씨가 2006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묘역에서 열린 전태일 36주기 추도식에서 이소선 여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민종덕 제공

아무리 매장하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노동현실 그 자체가 된 전태일과 그 눈물을 자꾸 끄집어 내는 어머니의 존재는 독재정권에게 눈엣가시였다. 온갖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지만, 이 여사는 남은 아들의 친구들과 청계 피복노조 결성을 주도했다. 노동자가 용역 깡패에게 맞아 사경을 헤맬 때는 달려가 진상 규명을 요구했고, 헌 옷을 팔아 어렵게 번 돈으로 노동운동가, 수배자 등을 돌봤다. 이 과정에서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유신 정권, 신군부 등을 거치며 목숨을 잃는 젊은이들이 계속 늘자 1986년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만들기도 했다. 유가협이 1990년 6월항쟁 기념행사에 맞춰 연 합동추모행사에서 이 여사는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태일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냐?”

전태일의 어머니가 아닌 인간 ‘이소선’도 복원하기 위해 이 여사가 1929년 11월 경북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데려온 자식’으로 겪은 어려움,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고 도시빈민으로 굶주리면서도 네 자녀를 먹이려고 애썼던 시기 등도 담담하게 그렸다.

책은 단정한 문장으로 쓰였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렵다. 한 노동자가 벌써 46년 전 제 몸을 불태웠고, 그의 어머니가 평생 동안 “이 땅의 아들 딸들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목놓아 울었는데도 민 전 위원장의 지적처럼 여전히 척박한 이 땅의 노동현실을 자꾸 반추하게 되는 탓이다.

민 전 위원장은 “(이소선 여사가) 당시 노조의 한계조차 뛰어넘어 노동자가 고통 받고 탄압받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 함께 투쟁하고 고통을 나눴던 분”이라며 “고담준론이 아니라 이런 삶과 투쟁을 통해 용기, 교훈, 영감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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