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노동자의 삶이 비정규직 양산, 청년실업, 숨 돌릴 틈 없이 쥐어짜는 노동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에 온 몸을 바친 어머니의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리라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대모 이소선 여사 타계 5주기(3일)를 맞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돌베개)을 낸 민종덕 전 청계노조 위원장은 5일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무산시킨 일을 겪은 뒤 전태일 정신이 40여 년 동안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자 등이 투쟁으로 지킨 것임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출간 취지를 설명했다.
민 전 위원장은 1974년 헌책방의 철 지난 잡지에서 전태일 일기를 접하고 충격을 받아 그 길로 노동운동에 평생 투신한 인물. 잡지에 나온 한 줄 주소를 들고 이 여사를 찾아갔고, 평화시장에 취직해 일하다 청계피복노조의 대의원, 운영위원, 사무장, 지부장 등을 지냈으며 전태일 평전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가 생전 구술과 다양한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이 여사의 삶은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달려온 가시밭길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였다. 분신 직후 병원으로 실려와 간신히 숨만 붙은 아들이 남긴 몇 마디 말이 가슴 깊이 파고든 탓이다. “어머니만은 이 아들을 이해할 수 있지요?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뤄 주십시오” “배가 고프다”
아무리 매장하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노동현실 그 자체가 된 전태일과 그 눈물을 자꾸 끄집어 내는 어머니의 존재는 독재정권에게 눈엣가시였다. 온갖 회유와 협박이 계속됐지만, 이 여사는 남은 아들의 친구들과 청계 피복노조 결성을 주도했다. 노동자가 용역 깡패에게 맞아 사경을 헤맬 때는 달려가 진상 규명을 요구했고, 헌 옷을 팔아 어렵게 번 돈으로 노동운동가, 수배자 등을 돌봤다. 이 과정에서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유신 정권, 신군부 등을 거치며 목숨을 잃는 젊은이들이 계속 늘자 1986년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만들기도 했다. 유가협이 1990년 6월항쟁 기념행사에 맞춰 연 합동추모행사에서 이 여사는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태일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냐?”
전태일의 어머니가 아닌 인간 ‘이소선’도 복원하기 위해 이 여사가 1929년 11월 경북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데려온 자식’으로 겪은 어려움,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고 도시빈민으로 굶주리면서도 네 자녀를 먹이려고 애썼던 시기 등도 담담하게 그렸다.
책은 단정한 문장으로 쓰였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렵다. 한 노동자가 벌써 46년 전 제 몸을 불태웠고, 그의 어머니가 평생 동안 “이 땅의 아들 딸들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목놓아 울었는데도 민 전 위원장의 지적처럼 여전히 척박한 이 땅의 노동현실을 자꾸 반추하게 되는 탓이다.
민 전 위원장은 “(이소선 여사가) 당시 노조의 한계조차 뛰어넘어 노동자가 고통 받고 탄압받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 함께 투쟁하고 고통을 나눴던 분”이라며 “고담준론이 아니라 이런 삶과 투쟁을 통해 용기, 교훈, 영감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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