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5일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세계 리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경제 회복 과정에서의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켰고 세계 금융시스템 개혁을 주창한 것 등을 두고서다. 하지만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이 산적한데다 경제ㆍ통상분야에선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시진핑 역할론’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라는 시각도 엄존한다.
시 주석은 이번 G20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의 엄연한 한 축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미국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맞설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언행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남중국해 분쟁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 등에 대해선 이견을 표출하면서도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한 양국간 협력과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각시켰다. 시 주석과 중국 정부가 진작부터 이번 G20 정상회의를 세계경제 회복의 분기점으로 규정하고 사상 최초로 성장전략을 담은 ‘항저우 컨센서스’를 추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4시간이 넘는 마라톤 정상회담 말미에 시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 산책을 하는 장면은 그간 주장해온 ‘신형 대국관계’ 선전용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중앙(CC)TV와 신화통신 등 주요 관영매체들은 이 장면을 연일 대서특필함으로써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 있음을 의식적으로 부각시켰다.
시 주석은 국제사회 내 미국의 대체재 역할을 각인시키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G20 정상회의 기간에 브릭스(BRICS: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ㆍ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정상회담을 개최한 게 단적인 예다. 글로벌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공동협력을 합의해낸 건 브릭스의 발언권을 등에 업고 자국의 입지를 넓혀가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G20 정상회의 사상 가장 많은 개발도상국을 초청한 데에서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해관계 조정자 역할을 자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시 주석의 G20 정상회의 개회사는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질서에 대한 개편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중심의 현행 국제금융시스템을 대체할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미국의 오랜 우방인 캐나다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 주석이 자유무역 확대를 유달리 강조한 것을 두고선 미국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자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미국ㆍ유럽연합(EU)의 잇따른 반덤핑관세 부과 등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소식통은 “시 주석이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저성장 탈피와 보호무역주의 배척 등을 주장하며 주도권을 넓히되 안보현안에선 정면충돌을 피하면서도 양보하거나 밀리는 것 없이 자국의 이익을 지켜냈다”면서 “다만 사드를 비롯해 후순위로 미뤄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접근법과 국제금융질서 개편 과정에서 서방국가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조정해낼지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G20 정상회의는 이날 세계경제의 저성장 국면 탈피를 위한 정책공조를 골자로 한 항저우 컨센서스를 채택하고 폐막했다. 각국 정상은 보호무역주의와 통화절하 경쟁 거부,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한 재정지출ㆍ통화정책ㆍ구조개혁 등의 정책수단 활용 등에 공감대를 이뤘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G20 항저우 컨센서스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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