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호주와 미국 하와이 사이에 있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에 국립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혜륜 유치원’. 5개의 교실과 1개의 사무실이 딸린 2층 건물의 평범한 유치원이지만, 인구 25만명에 경기도 보다 조금 큰 1만2,200㎢의 면적인 바누아투에선 꽤 큰 규모에 속한다.
낯선 이국 땅에 세워진 한국 이름의 유치원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혜륜은 현대중공업 조선품질경영2부에 근무하는 고계석(51) 과장의 둘째 딸 이름. 혜륜양은 부산외국어대 신입생으로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가 폭설로 강당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고 과장은 선교사가 돼 평생을 봉사하면서 살겠다던 딸의 꿈을 떠올렸고,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학교를 짓기로 했다.
딸과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 과장은 교회 목사의 추천으로 섬나라 바누아투를 선택했고, 그 곳에 유치원을 지었다. 바누아투는 2006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전세계 178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나라였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달러 수준에 그쳐 교육 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유치원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4억여원은 유족 보상금으로 받은 6억여원으로 충당했다. 앞서 고 과장은 보상금 중 2억원으로 부산외대에 ‘소망장학회’를 설립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돕고 있다. 이에 부산외대는 혜륜양을 기리는 의미에서 교내 강의실 한 곳에 ‘그루터기 강의실’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고양의 가족들은 “그루터기의 새싹처럼 이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고 과장은 혜륜유치원 건립을 위해 금전적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마무리 공사에도 직접 참여했다. 이렇게 개원한 혜륜유치원은 오전ㆍ오후반으로 나눠 총 50여명의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조만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로 활용될 예정이다.
고 과장이 딸의 이름으로 설립한 혜륜유치원은 현대중공업 직장 동료들에 의해 5일 뒤늦게 알려졌다.
고 과장은 “먼저 간 딸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며 “별이 된 혜륜이의 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가진 아이들의 희망과 함께 찬란하게 빛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떠난 딸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면 눈가에 눈물이 먼저 스치지만 그럴 때마다 바누아투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