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하나
美 대선ㆍ리우 올림픽ㆍ브렉시트
국제사회 혼란 틈타 충돌 가능성
베이징ㆍ소치 올림픽 후 개전 전력
■“냉전 후 최악 관계” 서방-러시아
러,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EU, 전방위적 경제재제 돌입
우크라 분리주의 지원… 내전까지
■서방 불협화음에 러 세력 확산
브렉시트 英, 러 관계 개선 착수
터키와도 ‘친구’… 신밀월 관계
G20 4자회담서 서방 대응 주목
동유럽의 화약고로 꼽히는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였지만 2년 전 러시아가 무력 합병한 후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서방과 러시아의 패권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본국까지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10일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은 크림반도에서 테러를 저지르려던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의 계획을 사전 차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체포 과정에서 교전이 벌어져 FSB 요원 1명과 군인 1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FSB는 우크라이나 유격대원들에게서 TNT폭약 40㎏ 위력의 사제 폭발물 20여개와 탄약, 지뢰, 수류탄, 특수 무기 등이 발견됐으며 이들이 크림반도 내 가스배급소, 다리 등 주요 시설 공격을 계획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장은 엇갈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테러로 분쟁을 유발하려 한다”며 “러시아 군인의 희생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군사 행동을 시사했다. 반면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장은 공상에 불과하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행동을 위해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양측 모두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대로 병력과 군 장비를 증강 배치하며 군사충돌 우려가 커졌다. 엘리자베스 트뤼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의 갈등이 매우 염려된다”며 “상황을 악화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같은 입장을 밝히며 러시아에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외신들은 본격적인 군사충돌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미국 대통령 선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등으로 세계가 어수선한 틈을 타 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본국까지 침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가 베이징 올림픽(2008년) 직후 조지아를 침공했고, 소치 동계 올림픽(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위한 구실을 만든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본국까지 노리는 러시아
현재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는 냉전 후 최악으로 평가된다. 그 계기가 바로 2014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3년 12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친(親)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고 친서방 성향의 정권이 구성됐다. 이에 러시아는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의 자치 공화국인 크림반도에 무장병력을 투입해 의회 등 주요 시설을 점령하고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귀속했다. 냉전 종식 후 구축된 국제질서를 불과 한 달 만에 무너뜨림으로써 미국과 유럽을 경악시킨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EU는 크림반도 합병에 반발하며 2014년 7월부터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투자, 제품 수입, 국영은행 금융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전방위적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014년에 비해 3.7% 하락해 6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러시아인의 실질임금도 지난해 10% 이상 감소했다. CNN은 “러시아 내 물가가 폭등하면서 수백만명의 러시아인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포기하기는커녕 우크라이나 본국까지 넘볼 태세다. 이미 러시아계 인구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은 분리주의 세력이 자치국을 선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격렬한 내전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약 9,5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이 내전은 국제사회의 중재로 현재 휴전 상태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난달 10일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테러 모의에 대한 보복을 빌미로 우크라이나를 본격 침공하며 남ㆍ동부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격의 기회 잡은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과거 프랑스 나폴레옹부터 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러시아를 침략할 때 육지 통로가 됐던 곳이다. 더구나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80%가 우크라이나에 설치돼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러시아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데는 군사ㆍ외교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책임은 러시아 근처에서 섣불리 세력을 확장한 미국과 유럽 동맹국에 있다”며 “러시아의 사활이 걸린 우크라이나를 서방이 계속 동맹국으로 만들려 하면 러시아는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 미국과 유럽 각국의 따돌림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까지 내몰렸던 러시아의 존재감은 세계 정세의 불안과 함께 다시금 강화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를 생각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한반도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에 우군이 필요한 중국도 4일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1 주빈’으로 예우할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세력을 청산하며 서방과 척을 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푸틴을 ‘친구’로 칭하며 ‘신 밀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 고착화에 서방은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무기 지원요구에 미국은 찬성했지만 독일은 “긴장을 격화시킬 수 있다”고 거절해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2년에 걸친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무려 9.9%나 쪼그라드는 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테러 시도 주장은 G20에서의 4자회담 전 최대한 많은 카드를 확보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G20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을 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로 구성된 4자회담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서방이 얼마나 많은 대응 카드를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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