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짓밟힌 가수의 꿈 이뤄
할머니를 기억하자는 의미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8) 할머니가 ‘늦깎이 가수’가 된다.
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평양이 고향인 길 할머니는 최근 음반 발매를 목표로 젊은 시절부터 즐겨 불렀던 노래와 실향민의 아픔을 담은 ‘한 많은 대동강’ ‘아리랑’, ‘눈물 젖은 두만강’ 등 20여곡을 녹음하고 있다.
목소리가 좋고 타령을 잘 불렀던 길 할머니는 13세였던 1940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 하얼빈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간 탓에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정대협 측은 “일본군에 강제로 납치된 순간 위안부 피해자들의 재능은 강제로 죽임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빼앗긴 꿈을 성취할 수 있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음반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길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음반 제작을 권유 받았으나 미뤄오다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더 늦기 전에 목소리를 남기기로 결심했다. 길 할머니는 현재 패혈증과 당뇨병 합병증 등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이번 음반에는 단순히 노래를 녹음하는 차원을 넘어 할머니의 존재와 음성을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정대협 관계자는 “길 할머니의 음반은 올해 안에 완성돼 매주 주한일본대사관 맞은 편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현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라며 “상업적 목적이 아닌 만큼 수량을 많이 찍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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