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남부 다바오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가 발생했다. 마약상 근절을 위해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휘둘러 ‘징벌자’로 불리는 두테르테 정권의 총구가 무슬림 극단주의도 겨냥하게 되면서 남부 반군을 향한 그의 우호 노선도 위기에 빠졌다.
A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2일 오후 10시30분쯤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의 야시장에서 강력한 폭발이 발생해 현장에서 10명이 즉사한 것을 비롯해 14명이 숨지고 67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일부는 위독해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바오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20여년간 시장으로 재임했던 정치적 고향으로 대통령은 현재도 주말마다 다바오를 방문하고 있다. 특히 사건이 일어난 야시장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주 머물던 마르코 폴로 호텔 인근이기에 테러집단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게 아니냐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필리핀 정부에 따르면 테러의 주체는 무슬림 극단주의 무장집단 ‘아부사야프’다. 아부사야프는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모로족의 독립운동단체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기독교인과 외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테러단체다. 최근 일부 간부가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아부사야프가 올해 상반기 캐나다인 2명을 참수한 데 이어 8월말 10대 필리핀인을 참수한 데 격분해 군부에 ‘아부사야프 토벌’을 지시했다. 이에 필리핀군은 본거지인 술루제도 홀로섬에서 군사작전을 실행해 30여명을 사살했다. 델핀 로렌자나 국방장관은 “아부사야프가 홀로섬 공격의 보복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이 ‘무법상태’라 선포하며 군을 도심지에 배치하고 경찰의 평시 치안업무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부사야프는 필리핀 일간 인콰이어러에 이번 테러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 동조세력인 ‘다울라툴 이슬라미야’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필리핀 내 무자히딘(이슬람 전사)들이 두테르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표시”라고 말해 관여를 부인하지 않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거래와 부패 등 범죄행위에 대해 무자비한 대응을 하는 것과 달리 남부 무슬림 반군 문제는 가능한 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왔다. 취임 직후인 5월 16일 기자회견에서는 “아부사야프는 민다나오섬 문제에 깊이 연결돼 있다”며 “절박한 젊은이들이 어쩔 수 없이 극단주의로 경도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민다나오섬 문제란 남부 무슬림 소수민족이 필리핀 중앙정가에서 오래도록 소외돼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 그는 다바오시장 재임기에 반군과도 인맥이 연결돼 이들과 ‘사실상의 평화’를 수립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테러로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그동안 반군에 대해 유연한 대응을 이어온 두테르테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통령과 무슬림 반군 사이 지속되어온 느슨한 유대관계가 아예 끊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부사야프가 ‘무자히딘의 단결’을 주장하면서 결과적으로 정부와의 평화협상을 통해 자치권을 확대하려던 무슬림 반군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지역 균형 발전과 무슬림 자치권 확대를 위해 연방제 개헌을 추진해 왔는데, 무슬림 테러가 빈발하면 필리핀 국민 사이 반무슬림 정서가 팽배해져 연방제 개헌도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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