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일 “북한의 핵 위협이 제거되면 자연스럽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라며 ‘조건부 사드 배치’를 공식화했다. 북한의 핵 위협 문제가 풀리면 사드 배치를 철회한다는 의미의 조건부 사드 배치를 박 대통령이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4,5일쯤)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박 대통령이 중러의 사드 반발을 무마하며 대북 제재 공조를 이끌어낼 유력한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건부 사드 배치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 7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이 없어지면 사드는 불필요해진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비핵화 이후 판단할 문제”라고 답하는 등 정부 내에서 다소 엇갈리는 얘기들이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할 카드로 정부가 조건부 사드 배치를 공식 천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외교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드 배치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계획의 일환이라는 의혹으로 중러가 강력 반발해왔던 만큼 사드가 MD와 무관한 북핵 대응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조건부 배치를 공식화하자는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원치 않는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도 지난 2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이루면 사드는 필요 없다”고 밝히며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을 설득 한 바 있다.
실제 중국이 최근 한중 관계 악화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뚜렷이 하고 있어 조건부 배치가 한중 사드 갈등의 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왕 부장은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뒤 사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도 “중한이 협상을 진행해 쌍방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바란다”고 말해,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중국은 이어 유엔 안보리의 대북 규탄 성명 채택에도 협조해 사드 갈등으로 악화일로를 치닫던 한중 관계에 숨통을 틔웠다. 양국 간 기 싸움으로 불투명해 보였던 한중 정상회담 일정이 박 대통령의 순방 직전에 극적으로 성사된 것도 양국이 상황 관리를 위해 사드 출구 찾기에 공감했다는 뜻이다.
조건부 배치는 이처럼 사드 출구가 필요한 양국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는 카드다. 우리 정부는 북핵 대응에 국한된 사드 도입에 방점을 찍고, 중국은 사드 철회의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사드 철회 조건으로 케리 장관이 언급한 ‘북한 비핵화’ 대신 ‘핵 위협이 제거되면’이라는 다소 모호한 문구를 사용한 것도 중국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으로선 북핵 정국이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면 ‘핵 위협이 제거됐다’며 사드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 보다는 현실적인 철회 조건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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