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축구대표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30ㆍ바이에른 뮌헨)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준결승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7-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1골을 내주자 수비수에게 벌컥 화를 냈다. 느슨한 경기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동료들을 큰 소리로 질타한 것이다.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노이어를 떠올렸다. 중국은 확실히 기량면에서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다. 한국은 후반 중반까지 3-0으로 앞서며 손쉽게 경기를 끝내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29분과 32분 잇달아 실점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첫 실점은 수비 실수였다.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은 “우리 같은 팀의 레벨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실점은 하오준민(29)의 프리킥이 워낙 날카로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이 공격 지역에서 볼을 끌다가 빼앗겨 역습을 당해 반칙을 한 게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후에도 아찔한 장면이 계속 연출됐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던 경기가 매 순간 가슴 졸이는 격전이 돼버렸다. 한국이 갑자기 무너진 원인은 뭘까. 무엇보다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져서다. 슈틸리케 감독도 “축구는 70분만 잘해선 안 되고 90분을 다 잘해야 한다”고 꼬집으며 “정신력이 흐트러졌고 몇몇 선수들은 풀타임을 뛰는데 어려움을 보였다. 두 가지(체력, 집중력)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왔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막바지 크게 고전했다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확인 가능하다.
축구 데이터 분석업체 팀트웰브가 전반과 후반 그리고 후반 초반과 후반 중반 이후로 세분화한 시간대별 볼 점유율을 보면 유의미한 변화가 눈에 띈다.
한국은 전반 볼 점유율에서 73-27로 상대를 압도했다. 후반 18분과 21분 추가 득점한 시점까지 이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후반 30분 이후 중국의 볼 소유가 많아졌다. 후반 32분 70-30, 후반 38분 69-31이었다. 한국이 연이어 실점(후29, 후32)한 시간대다. 주도권이 완전히 중국으로 넘어갔고 후반종료 뒤 점유율은 66-34까지 좁혀졌다.
한국 선수들은 총 10만8,688m를 뛰어 10만5,473m의 중국보다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FC바르셀로나와 같은 세계적인 팀은 보통 한 경기에 11만m 이상 뛴다. 한국은 중국보다 전체 뛴 거리는 많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활동량이 둔화되는 흐름을 보였다고 한다. 팀트웰브 이정석 팀장은 “시간대별 활동량까지 세부적으로 수치화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선수들의 뛰는 양이 후반에 계속 줄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스성공률도 널뛰듯 달라졌다.
중국이 전반에 시도한 패스는 61개에 불과했다. 한국(295개)의 5분의1이었다. 수비 지역에서 잔뜩 웅크린 채 간간이 역습만 시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후반에 중국의 패스 횟수는 83개로 늘었고 성공률도 59%에서 61%로 높아졌다. 무엇보다 중국은 공격지역에서 패스성공률이 전반 58%에서 후반 75%까지 치솟았다. 반면 한국은 전체지역(93%→87%)과 공격지역(92%→86%) 모두 전반에 비해 후반에 패스성공률이 떨어졌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시리아다.
시리아의 정세가 불안해 6일 오후 9시(한국시간) 중립지역인 말레이시아 세렘반 팔로이 스타디움에서 2차전이 열린다.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0-1로 패한 시리아는 한국이 속한 조에서 최약체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국전처럼 후반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승리를 낙관하기 힘들다. 슈틸리케 감독은 “미얀마나 라오스 같은 팀을 상대할 때 나오는 실수의 결과와 중국이나 이란 같은 팀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실수의 결과는 큰 차이가 난다. 최종예선에서는 실수가 곧 실점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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