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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살얼음판 위의 국회의장

입력
2016.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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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장 개회사가 부른 초유의 국회파행

정쟁의 도마에 오른 의장의 중립성 논란

국회운영 대국적으로 보는 감각 아쉬워

‘역사학자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많은 자유를 누리지만, 동시대인을 논할 때는 그런 자유를 누리기가 망설여진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평화회의 결과를 비판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유명한 고전에서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한 말이다. 자신이 파리평화회의 영국 측 인사로도 참여했던 케인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의 자유를 간혹 누리겠다’며 독자의 이해를 바란다는 토를 달았다. 자신의 편견이 개입될 소지나 이해당사자 반발이 없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소신을 펴겠다는 뜻이리라.

유사한 논란이 우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퇴진과 정부의 일방적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비판이 담긴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가 초유의 국회 파행을 불렀다. 중립성 의무 위반이라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반발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아주 좋은 내용”이라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의 칭찬이 엇갈린 걸 보면 기울긴 했나 보다. 우 수석의 퇴진 불가피론이 여당 수뇌부에서 나오는 실정이고,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국내외 후유증은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라 정 의장 발언은 입장 차이만 있을 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게 그리 없다. 다만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이야기 한 것”이라는 해명은 소신이 짙게 더해져 있다고 할 것이다.

여당의 의사일정 보이콧까지 부른 파행은 의장 자리 성격 때문이다. 국회는 16대 때인 2002년 3월 국회법 개정(20조2항)을 통해 의장의 당적보유 금지를 명시했다. 불편부당과 중립 의무를 부여한 것으로, 공정한 국회 운영에 책임을 다하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여야 이견을 조정, 중재하기보다 날치기 통과 등으로 정권 하수인 노릇이나 하며 국회 격을 떨어뜨린 전례로부터 탈피하기 위함이다.

돌이켜보면 의장 자리는 국가 의전 서열 2위라는 허울만 그럴듯 할 뿐 사자와 호랑이가 으르렁대는 우리에서 욕받이가 되기 십상이다. 능수능란한 조련사가 되기는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입법부 수장으로서 원만한 국회 운영의 책임과 부담은 매우 크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명 의장으로 이름을 날린 고 이만섭 의장이나 전임 정의화 의장이 직권상정을 바라는 대통령의 요구를 물리쳐 ‘친정과의 불화’마저 마다하지 않은 뜻도 여야의 극한 대립을 피하고 국회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당리당략에 치우쳐 눈앞의 이익밖에 보지 못하는 여야의 안목과 상충하는 이해를 그나마 조정할 사람은 국회의장밖에 없다. 당적 보유 금지뿐만 아니라 다수당의 최다선 의원을 뽑는 것도 협상과 절충의 산 경험이 중요한 필요성에 따라 굳어진 관행이다.

개회사의 거센 후폭풍을 보면 차라리 정 의장이 대통령을 만난 면전에서 우 수석 거취나 사드 문제를 거론했다면 논란의 성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직언으로 포장하기 수월했을 것이고, 국회의장으로서 할 만한 쓴소리라는 말도,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 전했다는 말도 훨씬 설득력을 더했을 터이다.

두 문제에 대한 입장은 여야는 물론 여당 내에서도 여러 갈래다. 의혹만으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청와대 추종파가 있는 반면 도덕적 책임론자까지 분화해 있고, 사드 역시 지역적 이해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사고의 스펙트럼을 다 아울러야 하는 의장의 입장에 비춰 정 의장의 개회사는 적어도 대국(大局)적이지 못했다. 모욕적인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새누리당의 격한 반응은 야당 출신 의장 길들이기라는 정략 외에도 존중받는 ‘코디네이터(조정자)’가 아니라 ‘정쟁의 플레이어’로 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살얼음판인 여소야대 국회 운영에 있어 정 의장에게 큰 부담이 될 게 분명하다.

운전교습을 받을 때 시선을 멀리 두라는 말을 듣는다. 초보자는 차량 앞만 보기 급급하다. 사고 나기 알맞다. 걸핏하면 협상 테이블을 엎고, 팔을 걷어붙이는 천생 싸움꾼을 태우고 가는 의장은 더 멀리 보고 핸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언제 전복될지 모를 여의도임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곤란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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