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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나 숙대 나온 여자야

입력
2016.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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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A는 몇 년 전 이혼을 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주부가 되었던 그녀의 결혼은 10년 만에 끝이 났다. 아이 둘은 A가 맡았다. 10년 만에 그녀가 세상에 다시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정규직은 어림도 없었고, 불판을 닦는 일도 김밥을 마는 일도 두 아이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A는 낮 동안에만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하루 두 집씩 뛰었다. 한 집당 네 시간씩인데 어느 집은 손빨랫감을 한 짐씩 내어놓고 어느 집은 절대 대걸레를 쓰지 못하게 했다. 대야에 뜨거운 물을 담아 밀고 다니며 마루 한쪽한쪽 손걸레질을 했다. A는 함께 앉은 친구들 앞에서 무르춤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가 너희들 집 예쁘게 청소해줄게. 대걸레로 밀어도 깔끔하게 잘 할 수 있어.”

친구들은 선뜻 수락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A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엄두가 안 난 데다 무엇보다 가사도우미가 필요한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맥주 두 잔에 얼굴이 빨개진 A는 아이들 때문에 일찍 일어나며 웃었다. “너희들, 나 걱정하지 마. 나 숙대 나온 여자야.” 취하지 않은 우리도 얼굴이 빨개져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며칠 전 소설가 한지혜는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썼다.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전도연이 바람 피운 남편에게 “꺼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재취업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쓰게 웃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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