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머 오툴 '여자다운 게 어딨어'

‘여자다운 게 어딨어’의 저자 에머 오툴은 “젠더를 다르게 연기하는 데에는 급진적 잠재력이 깃들어 있다”며 “일단 맛을 들이고 나면 일상의 각본을 다시 쓴다는 것이 전만큼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자다운 게 어딨어
에머 오툴 지음·박다솜 옮김
창비 발행·408쪽·1만6,000원

아버지와 아들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즉사했고,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런데 의사가 소년의 수술을 집도하기 직전 소리쳤다. “수술할 수 없습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미카엘라 워프먼과 데버러 벨이 심리학과 학생 197명, 7~17세 어린이 103명에게 이 수수께끼를 냈을 때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었다’, ‘게이 부부였다’, ‘의사가 정신이 이상했다’ 등등. 심지어 ‘초자연적 힘으로 의사인 아버지가 되살아났다’는 설도 나왔다. 실험 참가자 중 단 15%만이 정답을 맞췄다. ‘의사가 소년의 어머니였다’.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정답자는 22%, 평균보다 현저히 높은 비율도 아니었다.

심리학자 산드라 벰은 ‘우리가 세계에 대고 보는 렌즈’인 스키마(인지적 개념틀), 특히 젠더 고정관념을 통해 남을 읽으려는 경향성을 ‘젠더 렌즈’로 비유한다. 저런 젠더 스키마를 깨기 위해서는 “젠더 렌즈를 통해 보지 말고 젠더 렌즈 자체를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서구의 변방, 아일랜드 출신의 칼럼니스트 에머 오툴이 쓴 신작 ‘여자다운 게 어딨어’는 젠더 렌즈를 찾는 일종의 실험기다. 외출할 때 화장을 빼먹지 않았고, 날씬해지겠다는 강박으로 거식증에 시달렸고, 본능적으로 직장에서 책 많이 읽은 티를 내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애써 여자다움을 연기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으며 바뀌기 시작한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인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발적으로 성차별적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생물학적 여성이
여자다움을 행할 의무는 없다지만
남장ㆍ삭발ㆍ체모 기르기…
남자다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저자는 ‘연기론’을 증명해 보인다

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이력을 십분 발휘해 그녀가 행한 실험은 ‘역할놀이’다. 남장을 해보고, 삭발을 하고, 겨드랑이 털을 길러본다.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그저 남자 옷을 걸치고 아이라인으로 수염을 그렸을 뿐인데, 남자들은 그녀를 댄스홀의 경쟁자로 인식했다. 남자 옷을 입자, 남자처럼 춤추려고 의식하는 자신의 모습도 발견했다. 삭발을 하자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동성애자로, 공격적인 사람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TV 방송에 나와 겨드랑이털을 자랑스럽게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실험기 곳곳에 주디스 버틀러, 산드라 벰,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개념이 동원돼 저 변화들을 설명한다. 요컨대 ‘남자 옷’을 입는다는 건, 남자다운 젠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버틀러), ‘여성다움’을 수행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생물학적 여성이 ‘여성다움’을 행해야 할 어떤 의무도 없지만, 사회는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연기하라고 강요한다.

그는 “체모를 기르기 시작한 뒤에야 몸의 문제에서 내게는 조금도 선택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가족, 학교, 교육 등 사회를 통해 체득하게 되는 문화, 취향) 개념을 빌어 젠더 스키마 구조가 상당히 임의적으로 조직되는 데다 구성원 간 “체화된 일련의 합의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1차 세계대전 이전 제모하는 미국 여성은 없었다. 하지만 1915년 미국에서 여성용 면도기가 출시되고, 약 50년 후인 1964년에는 44세 이하 여성의 98%가 다리털을 밀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독자에게 저자는 “우리의 의도는 남성의 특권을 해체하는 것이며 여기에 설탕옷을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정신의 식민 상태’에서 살지 않으려면 누군가 얼토당토않은 여성다움을 요구할 때 배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비단 여성만이 아니다. 남성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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