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일 일부 배터리 폭발 사고가 난 ‘갤럭시노트7’을 전량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파격적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갤럭시노트7 개발을 총괄한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사과문 발표와 질의 응답 시간 내내 “소비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말을 수 차례 강조했다.
고 사장은 이날 오후 5시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열린 갤럭시노트7 관련 긴급 설명회에 침통한 얼굴로 등장했다. 불과 한달 전 갤럭시노트7을 향해 쏟아졌던 환호가 탄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목소리로 “삼성전자 제품을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고객님의 한결 같은 성원에 깊이 감사 드린다”고 말문을 연 그는 9문장의 짧은 발표문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사과문 발표 앞뒤로 현장에 몰린 150여 명의 취재진과 카메라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 사장이 삼성전자를 대표해 밝힌 대책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국내외에서 생산된 갤럭시노트7 250여만대(소비자에게 판매된 140여만대와 유통 물량 110여만대) 전부를 회수해 새 제품으로 교환하는 것은 물론 각국의 이통사와 협의해 환불 기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국내의 경우 스마트폰에 결함이 있을 경우 구입한 지 14일 이내에는 제품을 환불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을 늘려 환불을 원하면 누구나 가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제품 교체가 마무리될 때까지 판매를 재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고 사장은 “국내에서는 19일부터 갤럭시노트7을 신제품으로 교체할 수 있다”며 “당장 3일부터 서비스센터를 방문하면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SW)를 통해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요할 경우 신제품 교환 전까지 갤럭시S7 등 삼성전자의 다른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종합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고 사장은 “회수한 제품은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새 제품으로 되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중고 스마트폰을 새것처럼 수리해 원래보다 싼 값에 파는 리퍼폰 사업에 뛰어들 계획을 밝혀온 만큼, 부품 등을 교체한 뒤 리퍼폰으로 내놓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고 사장은 사태 수습에 총 얼마가 들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마음이) 아플 정도로 큰 금액”이라며 구체적 액수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갤럭시노트7(출고가 100만원 안팎)은 원가 자체가 높은 데다 회수할 물량이 250여만대나 되고 제반 부대 비용까지 감안하면 1조5,0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 사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제품 품질 관리 체계를 더 확실하게 다잡겠다”고 약속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리콜 사태로 삼성전자는 소비자 신뢰 추락과 실적 하락 등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 넘는 과감하고 발 빠른 조치를 내놓은 만큼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의 신뢰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시민단체 녹색소비자연대는 삼성전자의 입장이 나온 직후 “이례적이며 혁신적인 조치”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전공 교수는 “리콜 업체는 과감한 보상으로 소비자 불만을 감동으로 돌려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이번 대책은 소비자가 감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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