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만명이 넘는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점 악화하는 경제 상황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급증하는 부당한 해고나 임금체불 때문에 거리로 내쫓기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 ‘꿀잠’ 건립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6월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문정현 신부도 꿀잠 건립에 보태라며 붓글씨와 서각 110점을 내놓았다(본보 6월 29일자 28면). 각계각층에서 이어지는 이 같은 도움 덕에 목표 건립기금 10억원 중 절반 이상이 모였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부족한 건립기금에 조금이나 보탬이 되기 위해 8개 언론사 기자 13명이 특별잡지를 낸다. 잡지 이름 역시 ‘꿀잠’이다. 5일 세상에 나오는 꿀잠 첫 호 최종 편집에 한창인 기자들을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만났다. 전체 참여 기자를 대신해 편집책임을 맡은 전종휘 한겨레 기자와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 장재진 본보 기자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장재진 기자는 처음부터 잡지를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꿀잠 건립기금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을 만나 신문 제작을 제안했다. ‘기자들이 제일 잘하는 게 결국 글쓰기 아니냐, 노동 담당 기자라면 비정규직 이슈에 관심이 많을 테니 참여할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굴뚝신문’을 만든 경험이 있으니 그와 비슷하게 신문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는데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104쪽 분량의 잡지를 만들게 됐다.”
굴뚝신문은 지난해 1월 굴뚝에 올라 복직 투쟁을 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 언론사의 전ㆍ현직 노동 담당 기자들이 모여서 만든 12면짜리 신문이다. 전종휘, 김지환 기자 등은 당시 3호까지 만드는 데 참여했었다. 굴뚝신문은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가 408일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무사히 땅을 밟은 뒤 발행이 중단됐다.
꿀잠 잡지 참여 기자들은 7월 11일 처음 만난 이후 두 차례의 오프라인 편집회의와 수차례의 온라인 회의를 거쳤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보편적인 내용을 담는 잡지를 만들자고 합의했다. 사진작가, 소설가, 시인, 노동분야 연구원 등 30명 가까이 힘을 보탰다.
편집책임을 맡아 잡지 제작을 진두 지휘한 전 기자는 “소속이 다르고 시각이 상이한 기자들이 한 데 모여 하나의 잡지를 만든다는 일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경제적 이득이 돌아오는 일이 아닌데도 퇴근 후나 주말에 취재하고 잡지가 나오는 순간까지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말했다.
잡지는 기자들이 현재 노동 담당이 아니어서, 몸담고 있는 언론사의 편집 방향과 달라서 기사화하지 못한 노동 이슈를 다룬다. 표지 기사는 정규직으로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외환위기 이후 자회사로, 다시 2차 하청업체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30년 노동 인생을 다룬다. 이 기사를 쓴 김지환 기자는 “30년간 하는 일은 사실상 같은데 신분만 정규직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떨어진 노동자의 사연을 취재하며 ‘우리 아버지들’도 비슷한 삶의 곡절을 겪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꿀잠에는 이 밖에도 조선업 파견 비정규직 이야기, 여성 비정규직의 현실,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을 다루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임금 체불을 당했을 때 대처할 방법도 소개한다. 시사주간지 판형으로 1만부가 먼저 발행되는데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시민단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수익금은 모두 꿀잠 건립에 쓰인다.
2호 발행 계획은 아직 없다. 하지만 기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재능 기부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종휘 기자는 “이번 잡지 제작이 ‘십시일반’으로 밥 한 공기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다음번에는 기자들 각자가 밥 한 공기씩 들고 와서 다른 반찬도 놓고 커다란 상차림을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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