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ㆍ3당 체제 예산 국회
심사시간은 한 달 남짓 불과
여야 예산부수법안 대치 등
예산 10~20% 심사도 어려워
“400조원이 넘는 예산 중에 국회가 손댈 수 있는 것은 고작 1~2%에 불과하다. 그마저 정부가 자투리 예산 얼마 떼어주고 ‘딜’하는 게 국회 예산 심사의 본질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며 달래는 격이다.“ 19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 재선 의원은 국회의 예산심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부가 2일 사상 처음 400조원을 넘은 2017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예산전쟁’의 막이 오른다. 그러나 나라 곳간을 어떻게 채우고, 운영할지를 두고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치열한 논쟁의 장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졸속 부실 심사와 여야 간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 식의 구태가 재연될 것이란 지적이 벌써 나오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여소야대 정국, 3당 체제를 처음 맞는 예산 국회인 만큼 세입예산안부수법안 지정 등을 놓고 여야 대치도 격화될 것으로 보여, 내실 있는 예산 심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가 날림 예산안 심사를 반복되는 데는 예산안 심의를 할 여건과, 능력을 구조적으로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 크다. 400조원이 넘는 방대한 예산을 사실상 한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벼락치기로, 1년 임기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국회의원들이 꼼꼼하게 따져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00조원대 예산 중 국회 심사는 겨우 40조~80조에 불과할 것이란 의원들의 증언도 잇따른다.
여야를 합쳐 50명으로 구성되는 예결위원들은 지역 배려 및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뽑히는 경우가 다수이다. 예결위 자체가 겸임 상임위로 운영돼 의원들이 예산 심사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19대 예결위조정소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1일 “의원들이 아예 들여다 보지도 못하고 넘기는 사업이 태반인데, 국가의 재정 기조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현재 구조로는 여야 간 흥정을 통한 전리품 교환 과정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특히 올해 예산 국회에서는 야권이 세입예산부수법안을 카드로 여소야대 정국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만큼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예산안 심사 자체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흘러 나오고 있다.
국회의장의 고유 권한으로 지정하는 예산부수법안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따라 12월 2일 예산안이 자동 부의 될 때 함께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게 돼 있다. 때문에 여야 합의 없이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우회로로 여겨진다. 일종의 ‘직권상정’인 셈이다. 정의화 전 의장은 2014년 야당 반발에도 불구하고 담뱃세 관련 개별소비세법, 지방세법,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을, 2015년에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개정안 등 15건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당장 야권 입장에선 야당 출신의 정세균 국회의장을 통해 여당이 반대하는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 과세 강화’ 등을 포함한 법인세법, 소득세법 등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한 뒤 표 대결로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여당은 의사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고, 이 과정에서 여야의 극한 대치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예산안과 부수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최악의 경우 예산안 심사 과정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부수법안이 확정돼야 정부의 내년 예산 세입 규모가 결정되고, 예산안 심의가 가능한데 거부권 행사 때는 세입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부수법안 자동 부의가 시행된 지 3년 째인데 야당 출신 국회의장은 처음”이라며 “국회의장이 부수법안 관련 취지와 규정을 잘 감안해서 지정해 줄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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