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표 “의장 언동은 대권병”
비공개 회동선 고성까지 오고가
인사청문회도 반쪽으로 진행
丁 “본회의로 들어오라” 촉구
野 “개회사 문제삼는 건 유례없어”
1일 오후 2시 11조원대 추가경정예산안이 처리될 예정이던 20대 국회는 9시간이 지난 밤 11시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여야 대치의 장으로 뒤바뀌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거론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본회의 개회사가 신호탄이 됐다. 새누리당 의원 80여명은 늦은 밤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본회의 사회권 인계를 요구하며 사실상 의장실을 점거하다시피 했다.
이날 오후 정 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를 듣고 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예민한 현안에 대한 정부 비판이 이어지자 ‘폭거’라고 항의하며 집단 퇴장했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야당 입장을 대변했다는 이유였다. 새누리당은 긴급 의원총회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열어 정기국회 의사일정 전면 거부(보이콧)를 선언했다. 개회식 후 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기념사진 촬영 일정도 자연스럽게 무산됐다.
이정현 대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야 하는 첫날, 질서를 깨는 국회의장의 행태와 언동을 보면서 기가 막힌다”면서 “중증의 대권병이 아니고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이러한 도발은 있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새누리당은 “국회법에 대한 국회의장의 정면 도전으로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든 폭거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 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날 새누리당의 보이콧으로 추경안 처리가 미뤄진 것은 물론이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야당 의원들만 참여한 채 반쪽으로 진행됐다. 전날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추경안 합의 파기에 반발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반쪽 청문회로 열린 지 하루 만에 똑같은 사태가 재연됐다. 김용덕 선관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아예 올스톱 됐다.
정기국회 개회식의 파행은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립한 2009년 9월 이후 7년 만이다.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촉구결의안은 2013년 12월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강행한 데 반발해 민주당이 제출한 이후 약 3년 만에 재등장했다.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오후 늦게 정 의장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다. 비공개로 이뤄진 회동에선 고성이 오갔다. 하지만 “개회식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새누리당) “못할 말은 한 게 없다”(정 의장) 등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야당은 국회의장의 개회사 내용을 문제 삼아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는 일이 “유례없는 사태”라며 정 의장을 엄호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지키는 것이 추경안 통과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오후 9시쯤 정 의장은 “가장 시급한 현안은 민생으로 추경안과 대법관 임명 동의는 미룰 수 없으니 본회의장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김영수 국회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는 정 의장을 다시 찾아가 “2일 오전에라도 본회의 사회권을 (새누리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에게 넘겨 안건을 처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 의장이 사회권 이양을 거부하자 새누리당은 “당 소속 의원 129명이 다 모일 때까지 의총을 계속하겠다”고 의원들을 밤 늦게까지 소집했다. 이어 원내부대표단을 비롯해 의원 80여명이 정 의장을 항의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의원 수십여명이 한밤에 경호원들과 잠시 대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정을 넘긴 새벽 1시 가까이 돼서야 새누리당 의원들은 2일 오전 10시에 의총을 다시 열기로 하고 의장실을 빠져 나왔다. 야당 의원들은 기약 없는 본회의를 기다리며 의사당 인근에 모여 늦게까지 대기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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