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나간 5분이 화를 자초했다.
한국이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에서 3-2로 이겼다. 승리했지만 경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특히 3-0으로 앞선 후반 29분부터 5분 동안 한국 선수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상대 유하이(29)에게 만회골을 내준지 3분 만에 하오준민(29)에게 프리킥으로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후반 33분 런항(27)의 슛은 골키퍼 정성룡(31ㆍ가와사키프론탈레)의 선방이 아니었으면 동점골이 될 뻔했다. 아찔한 상황은 계속됐다. 후반 39분에도 실점과 다름없는 위기를 맞았지만 홍정호(27ㆍ장쑤 쑨텐)의 육탄방어로 가까스로 막아냈다.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은 황희찬(20ㆍ잘츠부르크)와 이재성(24ㆍ전북현대)을 잇달아 투입했지만 한 번 달아오른 중국의 상승세를 잠재울 수 없었다. 0-3으로 뒤질 때만 해도 잠잠하던 중국 응원단은 2골을 따라붙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응원전을 펼쳤다. 결국 경기는 3-2로 끝났다.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승점 3을 따는데 성공했지만 많은 과제를 남긴 한 판이었다.
이날 경기에는 당초 2만 명 이상의 대규모 중국 응원단이 운집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축구협회가 대한축구협회에 20억을 주고 산 입장권만 1만5,000장이었다. 중국 팬들은 경기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원정 골대 뒤쪽에서 분위기를 띄웠다. 노란색 옷을 맞춰 입고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만들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은 채 일사불란하게 ‘자여우(加油)’를 외쳤다. 두 팀의 유니폼 색깔은 붉은색으로 똑같지만 이날은 홈인 한국이 붉은색, 원정팀 중국이 노란색을 입었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는 예상치를 한참 밑돈 8,000여 명에 불과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단체 구매한 1만5,000장 중 6,000장 정도만 나갔다고 한다. 이 밖에 한국에 사는 중국 유학생 등 2,000명이 따로 티켓을 사서 들어왔다”고 추산했다. 이날 공식적으로 집계된 관중은 5만1,238명. 한국 응원단 숫자가 6배 가까이 많았다.
후반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이 완승하며 공한증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흐름이었다.
전반 21분 손흥민(24ㆍ토트넘)이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상대 정쯔(36) 맞고 굴절돼 골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로는 조금 느슨해졌다. 뒤로 잔뜩 웅크린 중국의 밀집 수비를 깨기 위한 과감한 스루 패스가 많이 없었다. 이청용(28ㆍ크리스털 팰리스)와 지동원(25ㆍ아우크스부르크)의 발에서 몇 번 킬 패스가 나왔지만 마무리 패스가 정교하지 못했다. 후반 40분에는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장현수(25ㆍ광저우 R&F)가 수비 지역에서 엉뚱한 곳에 패스를 해 볼을 빼앗겼고 이 볼이 우레이(25)에게 연결됐다. 우레이의 슛이 빗나갔기에 망정이지 실점이나 다름없었다. 현장에서 경기를 본 허정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우리가 전체적으로 경기는 주도했지만 첫 슈팅이 전반 17분에나 나왔을 정도로 조금은 답답했다”며 “장현수와 같은 실수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후반에 한국이 잇달아 2골을 내줄 때도 집중력을 잃었던 게 원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적은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후반 들어 한국은 2골을 더 넣으며 달아났다.
후반 18분 지동원의 크로스를 이청용 펄쩍 점프해 헤딩으로 꽂아 넣었다. 3분 뒤 세 번째 득점은 손흥민과 지동원, 구자철(27ㆍ아우크스부르크)의 작품이었다. 손흥민이 번개같은 스피드로 상대 진영 왼쪽을 돌파해 땅볼 패스를 했고 지동원이 발 뒤꿈치로 내주자 구자철이 넘어지며 마무리했다. 이청용은 작년 9월 라오스와 2차 예선 이후 1년 만에 A매치에서 골 맛을 봤다. 이 때까지만 해도 1~2골 더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8,000명의 중국 팬들 얼굴에는 좌절감이 깃들었다. 하지만 이후 어이 없이 2골을 헌납하며 경기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2로 앞선 상황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자 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박수를 쳤다.
두 차례나 장소가 바뀌며 오락가락했던 한국과 시리아의 최종예선 2차전은 6일 오후 9시(한국시간) 말레이시아 세렘반 팔로이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됐다. 대표팀은 3일 출국할 예정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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