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잠룡들 잇따라 용틀임 시작해
기울지 않은 운동장이 예선관건이라면
균형ㆍ실용 개혁노선이 본선 가를 것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백일홍(배롱나무)은 몇 달이고 붉지 않느냐지만, 어차피 한 번도 선연한 붉은 빛을 뿌리지 않는다. 그런 이치에 기대면 세간의 화제인 ‘청(靑)ㆍ조(朝) 전쟁’도 절정기를 지나 빛 바래가는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회광반조(回光返照)로 비친다.세월을 이길 장사(壯士)가 없음은 미래의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야권도 예외가 아니다.
야권 잠룡들의 용틀임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이 지난달 30일 대선후보 경선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틀 뒤 안희정 충남지사가 ‘불펜투수론’에서 벗어나 분명한 대선 도전 의지를 밝혔다. 야권에는 대선 주자가 많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과거 여권의 ‘이회창 대세론’이나 ‘이명박 대세론’‘박근혜 대세론’에 못잖은 대세론을 타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7월27일 광주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 ‘대망론’ 재점화에 나섰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정계복귀의 시기와 모양새를 가늠하고 있다.
이들은 김 의원과 안 지사와는 다르다. 자연연령이야 손 전 대표를 빼면 모두 적령기지만, 예선(손학규ㆍ안철수)이나 본선(문재인) 패배 경험상 ‘정치연령’은 참신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예선 재수 끝에 성공한 유일한 예다. 당내 조직력을 밖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확장했고, 약체 상대를 만나는 행운까지 얻은 결과다. 손 전 대표나 안 전 공동대표에게는 없는 정치자산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본선 재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삼수 끝에 꿈을 이루었다. 오랜 민주화 투쟁 경력에서 비롯한 권위 덕분이었다. 그 뒤로 본선 재수의 꿈은 문 전 대표가 처음이다. 그에게 YSㆍDJ에 견줄 어떤 역사적 공헌이 있는지 듣지 못했다. 대세론의 주된 근거인 내향적 조직력은 본선에서는 역풍을 부르기 쉽다. 날로 빨라지는 세상의 변화 흐름을 거슬러 유권자에게 재검증을 요구한다는 게 무엇보다 부담스럽다.
반면 김 의원과 안 지사는 이제 흐르기 시작한 물이다. 나름대로 정치역량도 보였다. 김 의원은 터를 다진 지역구를 버리고 적지(敵地)에 뛰어들어 3전4기에 성공했고, 안 지사는 충남에서 확고한 지역기반을 구축했다. 외적 환경도 좋다. 노태우ㆍ김영삼, 김대중ㆍ노무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10년 주기로 정권을 주고 받았다. 10년이면 누적된 유권자의 실망과 피로가 정권교체 요구로 이어질 만하다. 여당에는 아직 마땅한 대선 주자도 없다. ‘반기문 대망론’에 기대려는 모양이지만, 그러려면 유권자에게 한참 더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쳐야 한다.
다만 이런 행운은 예선 난관을 돌파한 뒤의 얘기다. 당장의 난관은 더욱 강고해진 문재인 대세론이다. “대세론은 무난한 패배의 다른 이름”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당 지도부에 주문해야 했듯, 김 의원의 부담감은 크다. 손 전 대표의 예선 좌절, 문 전 대표의 본선 패배를 부른 조직체질이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 체제가 잠시 희석시켰지만 추미애 대표 체제의 출범 이후 완연히 되살아났다. 손 전 대표가 스스로의 욕심을 버리고 적극적 지원자로 나서고, 김 전 비대위 대표의 측면지원이 있어야만 허물 수 있는 벽이다. 그만큼 김 의원의 앞길이 어둡다.
안 지사는 좀 낫다. 문재인 대세론의 지분 보유자로서 선발투수가 두들겨 맞을 경우 구원투수로 등판할 기회가 열려있다. 감독 판단에 따라 곧장 선발투수로 기용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등판하는 순간 수년 간 지워온 ‘노무현 가(家) 맏이’의 모습이 되살아날 우려다. 그가 전봉준 이승만 박정희 김구 조봉암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을 함께 거명, “그들의 역사를 이어받고 뛰어넘겠다”고 다짐한 게 그 때문이다.
누가 야권 주자가 되든, 균형감각과 실용적 사고를 다듬어 갖춘 ‘열린 진보’노선에 서야만 본선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다. 때가 무르익어도,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하늘의 뜻을 얻지 못한다. 물실호기(勿失好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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