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석유 독점 페트로브라스
룰라ㆍ호세프 정권 재창출에 한몫
국제 유가 급락하면서 상황 급변
불법자금 등 정경유착 수면 위로
베네수엘라ㆍ에콰도르 정부 등 당혹
“핑크타이드 시대 끝나나” 관측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 잇달아 터져 나온 권력형 부패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끝내 불명예 퇴진을 했다.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호세프의 몰락은 저유가의 비극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룰라 전 대통령부터 심화되던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대규모 정경유착 비리가 저유가 국면에서 폭발하면서 14년 좌파 정권을 고꾸라뜨렸다는 지적이다.
브라질 상원은 31일(현지시간) 전체회의를 열어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호세프는 탄핵된 직후 성명을 통해 “이번 탄핵은 의회 쿠데타”라며 “우리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비난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브라질 좌파 정권의 운명은 페트로브라스의 부침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1953년 출범한 페트로브라스는 지난 60년 동안 정유사업을 독점하며 브라질 경제의 심장 역할을 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유가가 고공 행진하던 2008년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남대서양 심해유전 개발을 추진하면서 페트로브라스에 독점개발권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2014년 호세프의 재선 성공도 석유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브라질 경기가 살아난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저유가 위기가 촉발되자 모든 상황이 돌변했다. 페트로브라스의 경영실적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3조원에 달하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거액의 입찰비리, 리베이트 등 정경유착 폐해가 낱낱이 들춰졌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페트로브라스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호세프는 직격탄을 맞았고, 올 5월 비리 혐의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탄핵 사유가 호세프의 ‘예산법안 위반’이지만 이건 의회가 지난 14년 동안 한번도 문제삼지 않았던 사안”이라며 “호세프와 페트로브라스 간 정경유착 비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자 그 동안 관행적으로 봐주던 예산안을 빌미 삼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룰라와 호세프 정권이 국제 유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페트로브라스를 위해 브라질 시중 유가를 높게 책정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페트로브라스가 심해 유전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줬다는 유착 의혹인데, 저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끝내 비리의 고리가 폭발했다는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세프의 몰락은 브라질 안팎으로 상당한 후폭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반정부 게릴라 활동가에서 최고 지도자에 올랐던 호세프가 탄핵 위헌 소송을 이어가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장 브라질 정국이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좌파 노동자당(PT)도 중도우파 성향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에 맞서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좌파정권 몰락이 남미 대륙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남미 좌파벨트의 맏형 역할을 해온 브라질 좌파정권이 우파 성향으로 교체되면서 한때 남미를 물들었던 ‘핑크 타이드’(온건 좌파 물결)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이 이날 호세프 탄핵 결정에 자국 브라질 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선 것도 남미에서 좌파 퇴조 바람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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