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이웃집 식구 사랑’이 화제입니다. 여기서 이웃집은 더불어민주당을 말하는 건데요. 한 때 한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던 더민주 식구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치의 달인’으로 불리는 박 위원장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민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 바로 전날(27일) 탈락한 김상곤 전 더민주 혁신위원장을 응원하는 글을 남겼는데요. 그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무상급식과 개혁진보적 교육감으로 명성을 높혔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경기도지사를 출마 준비할 때 저는 당시 우원식 최고위원께 지방선거 연대를 위해 경기지사와 광주시장을 김상곤 윤장현 후보께 양보카드로 서울 인천시장 등 민주당이 갖도록 하는 안을 김한길 대표께 건의하라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이것이 김한길 안철수 통합으로 이어졌고 경기지사는 김상곤 김진표 경선으로 김 교육감은 패배했습니다”라며 “그는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수원시 을 지역에서 전략공천 설이 있었지만 이유는 모르지만 출마 불발, 2015년 4월 재보선에서 다시 성남시 중원구에 영입하여 제가 문재인 대표와 당대표 경선에 패배하고 첫 만남에서 김상곤 천정배 공천 여부를 물으니 문 대표는 완전 경선하겠다 해서 저는 기자들께 무난한 공천은 무난한 패배를 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김 교육감은 경기 교육감으로 지명도는 있지만 성남 중원에 연고가 없는데 어떻게 경선 가능하겠느냐고 문 대표께 저는 말했습니다”라며 “2015년 문 대표는 혁신위원장으로 안철수 조국 박지원 순으로 제안했고 두 분은 물론 저도 거절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김 교육감이 거론돼 저와 만나 저는 거절하라 제안했지만 김 교육감은 수락했습니다. 혁신위원장으로 성공했을까요? 이번 당대표 경선출마를 듣고 저는 생뚱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교육감 절친에게 잘못된 선택이라고 했고 그 절친도 걱정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그는 꼴찌를 했네요. 김상곤 전 교육감에게 야당은 5번 배신의 상처를 안겼습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표는 결정적 순간에 3번에 걸쳐 상처를 안겼네요. 김상곤 전 교육감님! 위로를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좌절이 제일 나쁩니다. 넘어져도 뭔가를 들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는 언론인이 제가 대북송금특검으로 감옥에 있을 때 추풍령 고개 화장실에 있는 오늘의 명언을 편지로 보내서 저도 일어섰습니다. 힘 내십시요. 내일이 있습니다”라고 마무리 했습니다. 그는 마치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해 둔 데이터를 꺼내 놓듯 과거의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김 전 위원장을 위로하려 했나 봅니다.
그런데 정작 이 글을 통해 박 위원장이 응원과 격려를 해 주겠다는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측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김 전 위원장 측 핵심 관계자는 “이간책”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더민주 당 대표에 나서 떨어진 사람을 위로 한다면서 결국 옛날 아픈 추억만 꺼내 들고 있다”며 “김 전 위원장을 더민주 그리고 문재인 전 대표와 갈라 놓으려는 뻔한 이간책”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꼴찌’ ‘배신’ 이런 단어들은 남을 위로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니지 않느냐는 하소연과 함께 ‘아픈 사람 때린 데 또 때리는 것’이라고 씁쓸해 했는데요. 그 말을 듣고 글을 다시 읽어보니 알쏭달쏭하다는 들었는데요.
여기 또 한 편의 알쏭달쏭한 글이 있습니다. 박 위원장이 김 전 위원장을 이기고 더민주의 새 당 대표가 된 추미애 대표를 향해 쓴 글입니다. “추미애 대표가 정대철 고문의 안내로 DJ(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치 입문하던 날, 동교동 사저입구에서 DJ퇴임 하시던 날 서서 환영하던 모습, 제가 원내대표 때 시청광장 행사장에서 민주계를 대표해 최고위원 출마를 권했고 그날 밤 프라자호텔 뒤 음식점에서 의원들과 담소하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겹친다. 이제 사드 반대 당론, 세월호법, 검찰 개혁, 우병우 사퇴 등 확실한 야권 공조로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 해 나가자 제안한다”고 썼는데요.
역시 과거의 장면들을 또렷이 기억하듯 묘사하는 글인데요. 김 전 위원장에게도 그랬지만 마치 ‘난 당신의 과거의 많은 일을 알고 있다’는 과거 일을 그것도 많은 이들이 보는 SNS을 통해 올리는 패턴을 보이고 있죠. 김 전 위원장 측 관계자의 반응도 그랬지만 무릇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의 과거 모습과 나와 관련된 과거 일을 제3자가 보는 공간에 올리는 것 자체는 썩 개운치 않죠. 더구나 박 위원장의 글을 보면 100% 위로와 응원의 뜻만 담겨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소 촌철살인의 글과 말을 많이 남기는 박 위원장은 청와대, 여당(새누리당) 그리고 제1야당(더민주)을 향해서 전방위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몇 달 전까지 한 지붕 한 식구였던 더민주를 향해서는 특유의 비틀어 말하기 화법으로 꼬집는 경우가 많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배치 문제에 대해 국민의당은 초반부터 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한 반면, 더민주가 당론을 정하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자 연일 입장을 정하라고 압박을 해왔죠. 박 위원장은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추 대표가 당선되자 사드 반대 당론 등 야권 공조를 확실히 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더민주 한 재선 의원은 “결국 사드 반대 당론 결정 과정에서 더민주 내부의 분란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상하고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래도 한솥밥 먹던 사이인데 가끔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더민주 관계자들은 지난 겨울 박 위원장이 탈당을 하면서 친정을 향해 쏟아 부었던 악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에 박 위원장의 위로, 응원이 달갑기 들리기 어렵다는 말도 합니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제 3당 대표로서도 그렇고 정치인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존재감을 확실히 살리겠다는 뜻이 담겨있죠. 박지원이 아니면 청와대, 새누리당, 더민주를 모두 긴장케 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평소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부지런한데다 기억력도 뛰어나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박 위원장의 맹활약에 대해서 국민의당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국민의당)가 그 만큼 선수가 없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죠. 박 위원장 같은 거물급 에이스가 고군분투 하시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너무 에이스 한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말들도 들려서 속이 상하고 좀 그러네요.” 마치 프로야구 신생 구단이 생기면 선수 구성이 대부분 신진급 선수이고 다른 구단에서 뛰던 에이스 선수 몇 명이 주전으로 뛰게 되죠. 그리고 그 주전 선수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죠. 국민의당 상황도 그렇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박지원 대표 입만 보고 산다”는 말도 합니다.
20대 국회는 그 동안 예선을 마치고 9월 정기국회부터 본선을 펼치게 됩니다. 신생정당 국민의당으로서는 진정한 실력을 테스트 받게 되는 시기죠. 박 위원장 스스로도 이날 당 의원 전체가 모인 워크숍에서 “정기국회에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우리를 흔들려는 ‘제3지대론’, ‘야권통합론’ 그 소멸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인 정개 개편의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의원들에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죠. 박 위원장은 선수로도 뛰면서 어린 선수들을 챙겨야 하는 ‘플레잉 코치’라 할 수 있습니다. 박 위원장의 어깨가 상당히 무겁습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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