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도쿄에서 몇 달 머문 적이 있다. 신주쿠역과 신오쿠보역의 딱 중간쯤 되는 곳, 하야시 맨션 501호. 우리말로 하자면 숲 아파트였다. 나는 다다미방 하나를 세내어 살았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서는 비만 오면 젖은 풀냄새가 피어올랐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신오쿠보역까지 살방살방 걸어가 정종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250엔짜리 가지절임을 먹거나 또 비슷한 가격의 말고기 사시미를 먹었다. 내 외출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그날, 어쩌다 이른 저녁부터 그 삼겹살 식당에 들른 것인지 모르겠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마 김치찌개 백반을 먹었을 텐데, 찌개에서는 쿨쿨한 냄새가 났고 콩나물은 무쳐놓은지 사흘은 된 것 같은 데다 쌀밥은 찰기가 하나도 없었다. 혼자 골을 내며 밥을 먹는데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던 주인여자가 식당 문짝 앞에 서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비가 와. 너는 안 오고.” 그러고 보니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밥알들이 목구멍에 콱 들러붙었다. 그렇게 쓸쓸한 목소리라니. 들어주는 이 없는 그런 중얼거림이 그저 일상이라는 듯, 그녀는 잔꽃무늬 치맛자락을 심상하게 팔락이며 비가 들이치는 문짝을 야물게 닫았다.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이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끝난 것이 없는데 저희들끼리 다 잊은 사람들은 그들의 단식을 뜨악하게 바라본다. 다시 여름이 지나가지만 아이들은 오지 않는다. 또 비가 오는데도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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