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서별관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을 추가경정예산(추경) 연계 카드로 내걸었던 건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두 친박 핵심 인사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톡톡히 망신을 주겠다는 심산에서였을 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민생을 담보로 한 추경을 내팽개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카드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받아들 수밖에 없을 거라고 판단을 한 모양이다.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전술인지는 모르겠으나, 완전 패착이었다. 최경환과 안종범이 누군가. 미국 위스콘신대 인맥으로 똘똘 뭉쳐 이 정부 경제정책, 나아가 경제계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던 실세 중 실세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리고 새누리당 내 친박들이 청문회에서 두 사람이 야당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걸 용납할 리 없다. 박 대통령은 또 누구인가. 여론이 뭐라고 하든 귀를 꽉 막은 채 측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각종 비위 의혹에 휩싸인 우병우 민정수석 한 명을 지키겠다고, 나라가 난리법석이 나도 꿈쩍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확인되고 남는다. 어디 우 수석뿐인가. 2014년 잇단 총리 후보자 낙마로 인한 인사 검증 실패의 책임을 물어 ‘기춘 대원군’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퇴진론이 여권 내부에서까지 일었을 때도,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으로 이른바 ‘문고리 권련 3인방’ 사퇴 요구가 들끓었을 때도 박 대통령은 완강하게 그들을 지켜냈다.
외려 핀치에 몰린 건 더민주였다. 추경이라는 민생과 직결된 엄중한 사안에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연계한 것이 얄팍한 술수라는 여론의 질타를 들어야 했다. 국민의당마저 이런 더민주에 등을 돌리면서 결국 최경환, 안종범 두 사람은 증인에서 제외됐다. 그 대가로 얻어낸 것이 작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 청문회라지만, 주고받은 손익계산서의 균형은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
최경환ㆍ안종범을 지켜낸 새누리당이 승리를 자축했다면 그건 정말 비양심적이다. 새누리당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열기로 야당과 합의한 당사자다. 그래 놓고 두 사람만큼은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시킬 수 없다고 버텼다.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자금을 퍼주기로 결정한 작년 10월 서별관회의 당시 한 사람은 경제부총리, 다른 한 사람은 경제수석이었다. 이 둘을 빼고는 그 날 서별관회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 현 정부 핵심 인물은 쏙 뺀 채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강만수 전 산은 회장 등은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하니, ‘물타기 청문회’란 얘기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내 잘못은 묻지 않고, 남의 잘못만 들춰내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무능력, 무책임의 극치다.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자금 마련이 시급하다며 한국은행에게 자본확충까지 떠넘길 때는 언제고, 정작 국회에서 추경이 한 달 넘게 겉돌며 실업자들이 속출하는데도 아무런 힘조차 쓰지 못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말 비통한 심정”이라며 읍소를 한 게 고작이었다. 참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경제정책 수장이라면 단지 비통함만을 호소할 게 아니라 윗선에 이렇게 직언을 했어야 옳다. “최ㆍ안 두 사람을 청문회에 내보내 달라. 아무 잘못이 없다면 청문회에서 당당히 밝히면 그만 아닌가. 그들을 지키는 것이 정말 국민들의 민생보다 더 중요한가.”
추경과 청문회는 또다시 꼬였다. 더민주의 누리과정 연계 예산 단독 편성에 새누리당이 발끈하며 30일 처리키로 했던 추경은 다시 발이 묶였고, 새누리당은 청문회 약속도 파기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렇잖아도 핵심 증인이 빠진 청문회는 맹탕이 불 본듯하고, 골든타임을 흘려버린 추경의 효과는 이미 상당부분 날아간 터다. 애당초 이들이 민생이나 책임규명에 눈곱만큼의 관심이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