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 제품의 유독 물질 농도
실험 때와 다른 비율로 설정
SK케미칼 “전문성 부족 탓 오류”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을 주장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한 시험성적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9일 우원식(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SK케미칼로부터 제출받은 ‘가습기 메이트 노출평가 시험’ 보고서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정부가 원인불명 폐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한 직후 자체적으로 독성을 검증하기 위해 에이치시티라는 업체에 의뢰해 2011년 10~11월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ㆍ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의 공기노출 실험을 실시했다. CMITㆍMIT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의 원료로 2012년 정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실험 결과 제품의 권장사용량인 20㏄를 넣고 가습기를 6시간 틀었을 때 공기 중 CMITㆍMIT 농도는 각각 0.00247㎎/㎥, 0.00269㎎/㎥로 나타났다. CMIT와 MIT의 공기 중 농도를 합친 값은 0.00516㎎/㎥ 로,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정한 안전 기준(0.34㎎/㎥)보다 66분의 1로 낮다고 볼 수 있었다. 애경은 2012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80명이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실험결과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애경 측은 SK케미칼 보고서를 인용하며 “권장사용량을 기준으로 실험한 결과 제품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습기 메이트에 함유된 CMITㆍMIT 비율이 3 대 1인 것과 달리 실험에서는 두 성분의 농도가 1 대 1로 나타나 실험조건을 조작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소속 A 연구원은 “실험을 할 때 시판 제품과 다른 비율로 시료를 사용했다면 이 실험결과로 안전성을 따지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실험시간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평균 제품 사용시간(10.1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목됐다. 우원식 의원은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려워 실험을 조작해 독성값을 낮추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가습기 메이트의 독성이 없다는 최종 평가도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PA 기준은 동물실험을 토대로 도출된 것이어서 사람을 상대로 유해성을 판단하려면 최소 100분의 1 이하(노출안전력ㆍMargin of Exposure)로 수치가 낮아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이뤄진 CMITㆍMIT 유해성 논의가 뿌리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시험기관의 전문성 부족으로 시판 제품과 다른 비율로 실험을 하는 오류가 발생했고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단순 실수였을 뿐 조작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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