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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슴도치 정부

입력
2016.08.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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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사람과 약삭빠른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곰과 여우’에 종종 비유한다. ‘곰보다는 여우가 낫다’는 말이 그렇다. 서양에서는 ‘고슴도치와 여우’를 대비시킨다.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가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알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 비유는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이 1953년 논문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셰익스피어처럼 많은 것을 두루 아는 사람을 여우로, 플라톤이나 단테처럼 중요한 하나를 깊이 아는 사람을 고슴도치로 비유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자본주의 새판 짜기’에 나오는 고슴도치와 여우에 대한 설명이 그럴싸하다. “고슴도치는 명료하고 일관된 중심 사상, 즉 단 하나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복잡한 문제와 예외는 무시하며 일관된 세계관에 맞추려 한다. 고슴도치는 모든 상황과 시점에 일관되게 적용할 단 하나의 답이 있다고 여긴다. 반면 여우는 변덕스럽고 다채로운 시각으로 다양한 목표를 추구한다. 세상은 일반화하기에 너무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단 하나의 통합 이론에 끼워 맞출 수 없다고 여긴다.”

▦ 고슴도치와 여우는 사안을 보는 두 가지 적대적 관점을 의미한다. 같은 사안을 서로 정반대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양측 모두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골라낸다. 취향에 맞지 않는 데이터와 움직임은 걸러낸 채 아예 채택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는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취사선택 된다. 또 숲과 나무, 전체와 부분의 관점일 수도 있고, 인내심과 지혜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고슴도치는 한가지를 파고들지만 미련하고, 여우는 호기심이 많고 현명하지만 비열한 측면이 없지 않다.

▦ 우리는 고슴도치와 여우 중 어느 쪽일까.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와 우병우 사태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은 이분법적 단순함과 융합적 사고의 빈곤을 특징으로 하는 고슴도치의 행태가 강하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기득권 지키기와 정쟁만 횡행한다. 안보와 경제는 위기로 치닫고 있지만, 이 난국을 극복할 만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책과 인사에서 아집과 불통, 오만으로 일관하는 이번 정부에 ‘고슴도치 정부’라는 별명이 붙을까 걱정이다. 여우의 지혜가 아쉬운 시점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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