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한 달 뒤 예약이 평균 20건은 넘는데 다음달 28일 후에는 한 건도 없네요.”
28일 서울 시내 한 고급 한정식집 사장 이모(57ㆍ여)씨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한 달을 앞둔 분위기를 묻자 푸념부터 늘어 놓았다. 저녁 코스가 1인당 6만~13만원대인 이 음식점은 된서리를 맞은 지 오래다. 이씨는 “직원도 줄이고 대비를 해볼까 했는데 점심은 아예 손님이 없고 저녁도 예약이 갈수록 줄고 있다. 장사를 접으라는 얘기”라며 답답해 했다.
김영란법 시행까지 한 달이 남았지만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골프장 등의 예약이 줄고 저가 선물세트가 팔리며 달라진 접대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정식집ㆍ골프장 매출 30% 감소
한국식 접대를 상징하는 한정식집과 골프장에서 김영란법 여파는 벌써 체감되고 있다. 서울 도심과 강남의 주요 한정식집은 평균 20~30% 정도 하루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들의 사랑방으로 유명한 종로의 한 한정식집 사장은 “다른 한정식집과 비교해 가격대가 센 편도 아닌데 최근 한 달 사이에 공무원들이 자취를 감췄다”며 “하루 매출이 300만원대에서 100만원대로 줄어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 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법 시행 이후 예약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강남의 한 고급 한정식집 관계자는 “어제도 내달 말일로 예정된 20명 단체 예약이 취소됐다”며 “다음달 예약률이 작년과 비교해 3분의 1은 감소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한정식집이 매물로 나온 경우도 여럿 눈에 띄었다. 안국동의 한 부동산 사장은 “인사동 인근에만 한정식집 매물이 6건이나 된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과 강원 홍천의 골프장들을 둘러 본 결과 법 시행일(9월28일)을 낀 주말이 직전 주말보다 예약 건수가 30건 적었다. 27일에도 용인의 한 골프장 오후 일정이 20여건 비어 있었다. 이 골프장 관계자는 “8,9월 성수기 주말에 예약이 비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9월 중하순도 많이 비어 있는데 4분기에는 매출이 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우선물세트 줄고 꽃 배달 거절 일쑤
추석 마케팅을 시작한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등은 5만원 이하 선물세트 구성에 주력하고 있다. 고급 선물세트의 대표격인 자연산송이와 한우 선물세트는 찾는 이가 거의 없다. 경북 상주축협 관계자는 “추석 대목에도 한우 선물세트 문의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돼지고기를 섞은 저가 세트 구성도 고려해 봤지만 한우를 브랜드로 내세운 지역 이미지가 깎일까 봐 포기했다”고 말했다.
꽃 소매상들은 다른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 화환과 조화를 배달해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만난 화원 주인 정모(62ㆍ여)씨는 “얼마 전부터 서울시청이나 정부서울청사에 배달을 가면 거절 당할 때가 많아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여의도의 추석 풍경도 달라졌다. 예년 이맘때면 의원회관과 국회 차도는 택배 차량과 퀵 서비스 기사들로 넘쳐났지만 선물꾸러미조차 보기 어려워졌다. 한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법 시행 전이지만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아예 페이스북에 “투명사회를 만들자는 김영란법의 취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번 추석부터 명절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기로 했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의원들과 보좌진도 선물을 보내겠다는 기관들에 자택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
“거품 빼자” 자정 노력도 확산
바뀐 사회 분위기에 발맞춰 살아 남으려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국회 업무를 보는 기업ㆍ부처 관계자들이 즐겨 찾는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 사장은 “반찬 가지 수를 줄이거나 재료를 저렴하게 해 한끼 가격을 낮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천의 한 골프장 관계자는 “앞으로는 법인회원권을 이용하는 기업 고객 대신 개인회원 마케팅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서상현 기자 i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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