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화를 보았습니다. 울게 되면 참지 않고, 참아야겠다 마음 먹으면 울지 않는데, 그게 안 되었습니다. 참으려고 했는데 울었습니다. 이곳을 보여주는데 저곳이 겹쳐졌습니다. 평범한 시민에게 닥친 재난과 구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갇힌 그에게 구조대장이 반복하는 말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울었습니다. 당연한 이 말이 작동되지 않는 곳은 재난사회일 수 있습니다.
ps.는 익명, 가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시의 사연인 즉 이러합니다. 목제가면이라는 시가 있는데, 내용이 생각이 안 나고, 그것은 나의 망각이 아니라 가면 쪽 실종인 느낌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제목이 목제가면이 아니라 육체가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실종 이후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진짜 목제가면 수만큼 다 다른 내용을 가진 ‘미완과 무명’의 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가면 이야기이면서 다른 이야기입니다. ‘있었다’에서 ‘있다’로, 실종 이후에서 실종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견딜 수가 없다, 감당할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의 태도입니다. 두 말도 사족이 되는, 시와 삶의 실천을 보여주는 김정환 시인은 이쯤에서 이러시네요. 뭐 그렇게 심각할 것 까지야.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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