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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를 위한 녹색당?

입력
2016.08.2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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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 녹색당 당원이다. 녹색당원으로서 호주 연방의회 의원에 두 차례 입후보했다. 하지만 11월 8일 미국 녹색당 대통령 후보인 질 스타인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 정치 운동이 이뤄낸 모든 성과가 미국 녹색당의 잘못에 가릴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0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가 플로리다에서 승리했다면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플로리다에선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가 537표 차로 승리했는데, 녹색당 후보 랄프 네이더를 찍은 유권자는 9만 7,241명이었다. 네이더는 이후 자신의 웹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렸다. “2000년 출구 조사에 따르면 나를 찍은 유권자 중 25%는 내가 없었을 경우 부시에게, 38%는 고어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는 기권했을 것이라고 했다.” 네이더가 대선 후보에 출마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비율대로 그가 받은 표를 나눈다면 고어가 플로리다에서 1만 2,000표 이상의 격차로 승리했을 것이다.

투표가 있기 전 한때 네이더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그에게 선거운동을 중단해달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당신이 부시를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해줄 거라는 게 분명해졌다.” 네이더는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없다면서 선거운동 중단을 거부했다.

우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고 있다. 네이더가 플로리다에서 대선 후보가 아니었다면(미국에서는 주마다 규정한 요건에 맞아야만 그 주의 대선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미국은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긴급 조치를 취했을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다. 고어는 이미 1992년에 자신의 저서 ‘위기의 지구’에서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고어는 게다가 미국 부통령 재임 당시 빌 클린턴 정부를 대표해 교토의정서에 서명했다.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배출 제한을 위해 국제 사회가 이뤄낸 최초의 진지한 성과였다. 대조적으로 부시는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거부했고 교토의정서 서명을 철회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적 활동을 8년간 사실상 봉쇄했다.

부시는 다른 많은 형편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는데 당연히 그 중 최악은 정당한 이유도 없었고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던 이라크 침공이었다. 중동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 결과로 세계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후 누구도 다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별 차이가 없다’는 노선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간의 선거에서도 당연히 그렇다. 어쨌든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첫 번째 여자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클린턴은 여성, 건강보험, 총기규제 문제를 오랫동안 지지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그는 “나는 과학을 믿고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구온난화 개념은 중국인들이 미국 제조업을 무력화시키려고 만든 것이다.” 그는 이후 그 발언이 농담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그는 트위터가 아니라 경제 정책에 관한 주요 연설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취소하고 미국의 세금을 유엔 지구온난화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걸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스타인이 2000년 당시 네이더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클린턴과 같은지 묻자 그는 “둘 다 똑같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당원들이 “더 낫긴 하지만 재앙에 가까운 건 마찬가지”라며 “기후 변화에 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나도 알고 있는데, 부시 정부 때보다 훨씬 낫다. 오바마의 정책 덕에 지난해 12월 파리기후변화협정이 체결됐다. 충분하진 않다는 건 분명하지만, 트럼프가 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낫다. 공화당이 미국 의회의 다수당인 걸 고려하면 민주당 출신인 오바마는 꽤 잘해왔다.

역사가 반복될까.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트럼프가 조지 W. 부시보다 훨씬 더 나쁜 대통령이 될 것 같아서다. 스타인은 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수 있는 커다란 두 개의 주,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 표를 받을 수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는 그가 3%가량 득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주 가운데 한 곳에선 변화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수치다.

나는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주에서 스타인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요청하라고 전 세계 녹색당 대표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스타인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투표자들에게 제발 이번 선거만이라도 녹색당에 투표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며 부탁해야 할 것이다. 위험성이 너무 높다.

양당체제를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나도 안다. 미국이 양당체제를 바꾸려면 투표 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녹색당은 현재 체제에선 불가능한 녹색당 대통령을 배출하려 애쓸 게 아니라 호주처럼 보다 공정한 투표 제도를 도입하려 애써야 한다. 미국에서 즉석결선(instant runoff) 투표로 알려져 있는 이 제도는 과반수의 득표를 받은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 최소 득표자를 탈락시키고 그 후보에게 갔던 표를 각 유권자가 2순위로 찍은 후보에게 넘겨준다.

그런 제도가 도입돼 있다면 이번 선거에서 스타인에게 투표하려는 사람은 트럼프에게 반사이익을 주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으면서 투표할 수 있게 된다. 추정컨대 그들 대다수는 2순위 지지 후보로 트럼프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그런 제도가 있었다면 지금 이런 칼럼을 쓰는 일도 없었을 텐데.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ㆍ윤리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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