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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주던 '막둥이' 구봉서 하늘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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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주던 '막둥이' 구봉서 하늘로 떠나다

입력
2016.08.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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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구봉서씨가 2013년 11월 1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2013년 11월 1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막둥이’라는 별명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원로 코미디언 겸 배우 구봉서씨가 27일 오전 1시 59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고인은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나 서울내기나 다름없다. 생후 사흘 뒤 가족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로 이주했고 대동상업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태평양 악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해 1949년 선무공작대에 입대한 뒤 군에서 6년 동안 연예활동을 하며 코미디언으로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1952년부터 KBS 라디오방송 ‘홀쭉이와 길쭉이’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구봉서입니다’ ‘막둥이 가요만보’ ‘7대 코미디쇼’ 등을 진행하며 국내 코미디계 주요 인물로 성장했다. 1969년부터는 1985년까지 ‘웃으면 복이 와요’와 ‘부부만세’ 등 인기 TV 코미디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코미디계 맏형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를 이뤄 많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특징이 없는 듯하면서도 푸근한 외모를 바탕으로 구수한 웃음을 전달했다는 평가다.

영화배우로서의 활동도 남달랐다. 제대 뒤 1956년 문화성 감독의 영화 ‘애정파도’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의 활동에 나섰다. ‘오부자’(1958)와 ‘삼등호텔’(1958),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 등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져갔다. 막둥이로 나온 ‘오부자’가 크게 흥행하면서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구봉서의 이름을 좀 더 널리 알린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이다. 구봉서는 전장의 공포 속에서 전우들에게 웃음을 안기는 부대원을 연기했다. 고인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1980)에 출연할 때까지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고인은 2009년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됐다. 6년 전부터 휠체어를 타고 대중 앞에 나섰으나 정정한 모습을 종종 비췄다. 지난해 3월 KBS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그대가 꽃’에서 출연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1966년 대일영화상 특별상, 67년 백마상 특별연기상, 68년 남도영화제 희극배우상 등을 수상했으나 고인의 인기와 연기 활동에 비해 홀대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 코미디언과 코미디 영화에 대한 당대 영화계의 편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고인은 2000년 MBC 코미디언 부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2006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에서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갑순씨, 아들 명회·원회·정회·승회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32호실. 장지는 모란공원. 발인 29일 오전 6시. (02) 2258 5940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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