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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우병우가 걸어 나와야 박근혜가 산다

입력
2016.08.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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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지키기’는 유례없는 특이 현상

청와대는 출구 막으며 갈등만 더 키워

우 수석이 민심 수용해 거취 결정해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청와대의 ‘우병우 지키기’가 국민의 속을 뒤집고 있는 요즘, 식상하기는 하나 저절로 떠오르는 고사성어가 하나 있다. 바로 읍참마속이다. 제갈량이 지시대로 싸우지 않았다며 수하에 있는 마속의 목을 벴고 그러면서도 아끼는 장수를 죽이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이 성어의 뜻이다. 당시에도 많은 장수와 참모가 그를 죽이는 데 반대했으니 지금이라면 지시를 어기고 전투에서 졌다는 이유로 빼어난 장수의 목을 베는 것이 옳은가를 두고 논란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이 사자성어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장수에게는 이 정도로 무겁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갈량 또한 스스로 승상에서 우장군으로 직급을 낮췄으니 아랫사람의 잘못에는 그를 부린 사람이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는 것도 또 하나의 교훈이다.

김대중정부 시절 금품 수수 의혹을 받은 신광옥 당시 법무부 차관과,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된 박주선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억울하다고 펄쩍 뛰면서도 사표를 먼저 쓰고 검찰에 나갔다. 법무부 차관이나 법무비서관 자리에 있으면서 수사를 받으면 또 다른 시비가 생길 수 있으니 옷부터 벗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무죄를 받았으니 결과만 보면 사표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유무죄 가리기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 주변 인사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잘못의 유무를 확정하기 전에 책임부터 묻는다. 그 때문에 억울한 경우가 있을 테지만 그것이 개인이나 조직을 위한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병우 지키기’는 이런 전례를 허무는 특이한 현상이다. 처가 소유 건물 매각과 의경 아들 복무 특혜 등 의혹은 의혹대로 사고 진경준, 이철성 등 인사 검증에도 실패해 업무 능력마저 의심받으면서도 꿈쩍 않고 자리 보전을 하는 것은 최근 정치사에서 보지 못한 드문 일이다. 그런데도 별 해명이 없으니 우 수석을 지키려는 이유만 궁금해진다. 궁금증은 결국 청와대가 우 수석 사퇴 요구를 ‘국기문란’이자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손잡은 식물정부 만들기’라고 한 데서 풀린다. 우 수석을 내치면 정부가 흔들리고 부패 기득권과 좌파 연합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이 생각은 정권의 도덕성보다 정권 보위가 더 중요하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 수석 한 사람의 거취와 정권의 운명을 동일시함으로써 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봉쇄한 꼴이 된다.

드러난 의혹이 만만치 않은 만큼 청와대 내 위상이나 실제 역할과 관계 없이 우 수석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민심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우 수석은 듣는지 마는지 요지부동이다. 민심에 귀를 닫은 요지부동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과 일방주의 시비에 휘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직 북한을 봉쇄하고 겨누겠다며 다른 의견이나 이해관계는 배척한 개성공단 폐쇄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이 그랬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자기비하와 부정적 국가관을 극복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주문한 광복절 경축사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 수석 거취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민심과 청와대 사이에 미묘한 전선이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선이 뚜렷해지면 갈등 또한 뚜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민심과 맞서는 것은 그래서 어리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수석이 물러나야 한다는 민심과 반대로 청와대는 국기문란, 식물정부 만들기라며 출구를 막아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사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우 수석밖에 없다. 유시민 전 장관도 “박근혜 대통령이 우병우 수석을 자르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도 우 수석이 나가 주면 좋을 것이라는 투로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우병우 수석이 할 일은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는 대통령의 대결 본능을 뜯어 말리고 대통령이 막아 버린 출구를 만들어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다. 청와대의 외골수들은 만류하겠지만 그렇게 해야 대통령도 살고 우 수석 자신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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