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이나 받자고 평생의 한(恨)을 지고 수십년 간 싸웠겠습니까.”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길원옥(89)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일본 정부가 조만간 ‘화해ㆍ치유재단’에 10억엔(약 110억원)을 송금할 예정이고, 한국 정부는 이 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으로 분할 지급할 것이라는 전날 외교부 발표를 성토하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몸을 끌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것이다. 김 할머니는 “자식이나 동생, 친척이 전쟁에 끌려갔다 돌아왔는데 위로금 몇 푼 쥐어준다고 용서를 할 수 있겠느냐, 아픈 사람만 그 마음을 알지 아닌 사람은 모른다”고 연신 가슴을 쳤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후속 조치로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을 받아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1억원을,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에겐 2,000만원 규모의 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전액 현금 지급 방침은 사용처를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 등 포괄적 부분까지 포함한다는 의미”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해당 출연금이 ‘법적 배상금’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할머니는 “명백한 사과 없이 재단에 돈을 주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나눠달라 하는 것은 배상도, 보상도 아닌 위로금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이런 돈을 받는 것은 피해자들을 팔아먹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머니는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배상금이 많지는 않지만 받겠다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한 김태현 화해ㆍ치유재단 이사장의 발언에도 울분을 토했다. 김 할머니는 “이사장이란 사람이 이렇게 반대하는 피해자들은 찾지도 않았다”며 “(재단 방침에) 전부 다 찬성한다는 식으로 나오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재단 설립과 현금 지원으로 매듭지으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독재정권 시절에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만 앓다가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정부 결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할머니들이 무슨 재단이 필요하느냐, 바른대로 안 할거면 차라리 정부가 손을 끊으라”고 절규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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