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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이 말을 걸고 싶은 만화가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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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이 말을 걸고 싶은 만화가가 되고 싶어”

입력
2016.08.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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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 만화가 박경은씨의 작품엔 주로 중동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외국인이 등장한다. 그는 "이방인을 그리며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재불 만화가 박경은씨의 작품엔 주로 중동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외국인이 등장한다. 그는 "이방인을 그리며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시리아서 프랑스로 이주한 소년

하이탐의 실제 이야기 그려

“한국인 관심은 너무 한국 중심

중동문제엔 선정적 생각만”

박경은(42)씨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주로 중동 문제를 다룬 작품을 내는 만화가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만화계에서는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9년 ‘평범한 왕’으로 데뷔해 지난해 ‘얄라 바이’까지 두 작품을 낸 그가 내달 16일 프랑스에서 세 번째 작품을 출간한다. ‘하이탐, 시리아의 어린 시절’이라는 작품으로 2013년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납치돼 10개월간 억류됐던 프랑스 기자 니콜라 에냉과 함께 만들었다. 대구대 여름 강좌 등을 위해 잠시 귀국한 박 작가를 최근 본보 편집국에서 만났다.

‘하이탐’은 시리아 소년 하이탐 알 아스와드의 실재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하이탐의 아버지는 시리아 반독재 시위의 시발점이었던 남부 도시 데라에서 반독재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책은 아버지와 함께 고향 데라에서 보냈던 하이탐의 어린 시절로 시작해 프랑스로 망명해 이주자로서 낯선 나라에 적응해 가는 청소년기까지 다룬다. “4년 전 프랑스로 이주한 하이탐은 지난해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지금은 엔지니어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프랑스 사회에 잘 적응한 시리아 출신 이주자의 이상적인 적응 모델이기도 합니다.”

문학성이 강한 만화인 그래픽 노블을 그리는 박 작가는 스토리를 쓰는 작가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단지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지역과 인물들을 직접 취재해서 작품에 녹이고 때론 대사도 수정한다”며 “시나리오를 쓴 작가들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쓴 글을 토대로 영화를 찍는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 번역, 출간된 '평범한 왕'과 프랑스판 '얄라 바이'
국내 번역, 출간된 '평범한 왕'과 프랑스판 '얄라 바이'

첫 작품 ‘평범한 왕’을 제외한 두 작품은 우연찮게 중동 출신 프랑스 이민자가 주인공이다. 박 작가는 “나 역시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두 개의 정체성을 갖는다”며 “작품을 통해 나를 찾는 것일 수도 있고 과거 내가 했던 선택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 묻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선택이란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이방인의 삶을 택한 것을 가리킨다.

박 작가는 원래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그는 “조소의 방식으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만화로 방향을 돌렸다.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만화를 배우고자 유학을 선택했다. 우리나라나, 일본, 미국 만화와 다른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정한 곳이 프랑스였다.

‘하이탐, 시리아의 어린 시절’의 표지
‘하이탐, 시리아의 어린 시절’의 표지

유학길에 오른 그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에서 만화일러스트레이션 전공으로 2006년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졸업했다. 이듬해인 2007년 세계 최대 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제의 ‘젊은 재능’ 공모전 분야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직업 만화가로 인생을 시작했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으며 프랑스의 ‘톨레랑스(타자에 대한 존중, 배려, 관용)’에 매력을 느꼈고 그것이 좋아 프랑스에서 만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런 것처럼 프랑스와 시리아도 하이탐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알게 됐으면 합니다.”

박 작가의 책 중에선 중동 문제와는 무관한 ‘평범한 왕’만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하이탐’도 아직까진 국내 출간 계획이 없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사는 너무 한국 중심적인 듯해 안타깝다”며 “한국인들은 중동 문제에 선정적이고 단편적인 관심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동을 소재로 한 네 번째 작품을 기획 중이라는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9월 중순부터 프랑스 여러 도시와 스위스, 벨기에 등을 돌며 ‘하이탐’ 홍보에 나설 예정이다. “당분간 프랑스에서 작업할 예정입니다. 한국인으로서 프랑스인들에게 말해 주고픈 메시지를 만화책으로 펴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프랑스인들이 말을 걸고 싶은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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