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진 혼란 계속
정부ㆍ언론마다 사상자 수 제각각
여름 휴양객들 생사 확인 안 돼
16세기 성당 등 문화재 피해 속출
“대비 없었다” 인재 지적도 나와
“태풍 한가운데를 배가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땅이 요동쳤다. 남편과 아이를 찾는 여성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이탈리아 라치오 주 리에티현에 사는 잔니 팔로타가 24일(현지시간) 오후 차를 몰고 도착한 마을 아쿠몰리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강진이 덮쳤다는 소식에 구조작업을 도우려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왔지만 그곳에는 이미 시신들만 즐비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어떤 도움의 손길도 구원을 줄 수 없는 참혹함. 팔로타는 “마을 전체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완전한 폐허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규모 6.2의 강진이 휩쓸고 지나간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 주와 움브리아 주, 마르케 주 등에서 오후부터 구조작업이 본격화면서 현장의 참상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지진 발생 초기만 해도 사망자가 70여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시신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사망자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매체인 안사통신은 이날 “최소 159명이 사망하고 37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진으로 최소 120여명이 사망했다”며 “이 숫자는 최종 집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25일 오전 집계에선 다시 사망자 수가 치솟았다. AFP통신은 이탈리아 시민보호청을 인용해 사망자 수를 250명으로 수정했다.
최악의 피해를 본 곳은 라치오 주의 아마트리체와 아쿠몰리 지역이다. 이곳에서만 195명이 사망했다.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 ‘아마트리치아나(Amatriciana)’의 탄생지로 유명한 아마트리체에는 이번 주말 열리는 파스타 축제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피해가 컸다. 특히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아마트리체와 아쿠몰리, 마르케 주의 페스카라 델 트론토 등은 수도 로마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전원마을이어서 여름이면 휴양객들로 유동인구가 2, 3배 정도 늘어나는 곳이다. 실제 아마트리체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호텔 ‘로마’에는 최소 70명이 투숙했는데 현재 이들 대부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마트리체 주민 마우로 마시밀리아노(49)는 “가까스로 집에서 빠져나왔다”며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슬퍼했다.
지진이 라치오주와 움브리아 주, 마르케 주 등에 걸쳐 있는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이곳에 있던 문화재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아마트리체에 있는 100여 개의 성당들은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화, 조각상들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15세기에 세워진 산타고스티노 성당의 절반 가량이 무너졌고,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저택 팔라초도 크게 파괴됐다. 또한 성인 베네딕토의 출생지인 움브리아주 노르치아에서는 베네딕토 집터에 있던 12세기 건물이 파손됐다.
이탈리아 구조당국은 지진 발생 이틀째인 25일 밤을 새워가며 무너진 건물 더미 아래에서 생존자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과거 사례를 보면 참사로 매몰된 이들이 물도 없이 이틀 이상 견디는 것은 힘들다”며 “구조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칠 경우 사망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물 더미를 걷어낼 중장비도 부족해 구조 작업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지만, 24일 저녁에는 페스카라 델 트론토에서 지진 발생 17시간 만에 10세 소녀가 극적 구조되는 희소식도 전해졌다. 소방관들이 "어서 줄리아, 힘을 내"라며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 있던 아이를 구해내는 모습이 현지 방송 스카이 TG24를 통해 생생히 중계됐다. 줄리아는 구조 직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회복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유럽국가 중에서도 지진 위험이 가장 큰 곳이다. 나폴리 인근의 베수비오 화산과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 등은 여전히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2009년 4월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발생한 규모 6.3 지진으로 295명이 숨지고 5만5,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섬 사이의 티레니아해 분지가 계속 확장돼 유라시아판을 아프리카판으로 밀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탈리아는 일본만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지만 그동안 대비책을 갖추지 못했다”라며 이번 지진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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