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통령 시대, 여성들은 행복할까. 덥다. 가만히 있어도 덥지만 더위는 간다. 기상청이 양치기 소년 흉내를 내도 더위는 간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물러가지 않는 것이 있다. 더위보다 더 2016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여성에 대한 적대와 폭력이다. 강남역 사건, 일베 소동, 메갈리아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념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여성 혐오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여성 상위시대(?)에 대한 남성들의 누적된 불만이 곳곳에서 폭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5년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세계 최하위권인 115위이다. 여성 문맹률이 60%에 달하는 인도도 108위로 우리보다 높고, 성차별이 제도화된 이슬람 국가인 쿠웨이트도 우리와 비슷한 117위이다. 남녀 임금 격차는 캄보디아와 네팔보다 더 심하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실체 없는 여성 상위시대에 대한 불만과 여성 혐오가 만연한 것은 슬픈 코미디이다.
하지만 더 슬픈 코미디가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여성가족부가 뒷짐을 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폭증하고 있는데도 여성가족부는 침묵하고 있다. 하긴 일본군이 여성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대해 진정성 있는 공식 사과를 받아내기는커녕 가해자 일본이 던져준다는 돈 몇 푼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봉합하려는 여성가족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참담한 현실은 이런 일들이 여성이 대통령인 시대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차별 없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설립된 여성가족부가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면 여성가족부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한심한 여성가족부를 위해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정부 조직 개정법안에 맞서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고 여성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장관들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여성가족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성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가 스스로 할 일을 회피하고 있는 사이 한국 여성의 지위는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2006년 96위였던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2015년 115위로 역대 최저 순위를 기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점점 더 힘없는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되면서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같은 피해자인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일베도, 이에 대항하는 메갈리아도, 불평등, 빈곤, 차별을 확대재생산 하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끼리 상처를 주고받고 있는 사이에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만든 가해자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 싸움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여성가족부는 이런 현실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여성가족부는 왜 여성가족부가 한국 사회에 필요했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숙명론자처럼 여성가족부를 그저 작고 힘없는 일개 부처라고 생각하지 마라. 여성가족부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남성 기득권 구조에 맞서 여성을 평등한 시민으로 설 수 있게 하는 전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과 혐오를 종식시킬 수 있는 가시적인 대안을 제도화하는 것과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재단 설립을 즉각 중단하고 일본에 “진정성 담긴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여성 대통령의 시대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가장 극심했던 어둡고 참혹한 시기로 기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여성가족부는 시민들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혐오와 폭력에 담대히 맞서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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