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상담한 피해자들의
증상ㆍ제품 종류 등 통계 전무
의료지식 없는 상담원 5명은
용역업체서 파견된 계약직
단순 서류안내 업무만 해 와
4차 접수, 3차보다 4배 급증
관련 예산은 되레 2억 줄어
“정부 구제 의지 있나” 도마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이 최근까지 상담일지조차 작성하지 않아 피해자 규모나 유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문제 의식이 또다시 비판 받고 있다.
24일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가 지난달 26일 실시한 기술원 현장조사 회의록에 따르면, 권용진 특위 예비조사위원이 피해 접수 상담일지를 요구하자 기술원 측은 “(상담 전화가) 녹음은 되어 있지만 별도로 일지 작성은 안 한다”고 답했다. 기술원에 전화를 걸었던 피해 상담자들의 증상이나 제품 종류 및 사용 형태 등 통계가 전무하다는 뜻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식으로 피해 접수를 못 한 상담자 중에도 사망자나 중증환자가 있는데 이들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은 잠재적 피해자를 찾는 노력을 포기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피해 접수 상담원들의 전문성과 무관하지 않다. 기술원은 올해 5월부터 내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전화상담원 6명을 채용했다. 모두 콜센터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계약직이었다. 이마저도 계약 문제로 지금은 5명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의료 지식이 없는 일반 전화상담원들로, 심리상담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사실상 단순 서류안내 업무만을 지시 받은 것으로 특위는 보고 있다.
기자가 23일 오후 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상담 받을 수 없느냐”고 문의하자, 상담원은 이름만 물은 뒤 “일단 기술원 사이트에서 구비서류를 내려 받아 작성하고 저희 쪽에 등기로 보내주시면 그게 가습기 때문인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피해 증상이나 제품명 등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었다.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는 “최소한의 전문성은 갖춘 사람이 상담 업무를 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참담하다”며 “피해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곳이 이 정도라면 다른 피해조사 현실은 불 보듯 뻔하다”고 꼬집었다.
기술원은 피해자 발굴을 위한 홍보도 부족했다고 질타 받았다. 올해 기술원의 주요 피해 접수 홍보 활동은 온라인 포털사이트 검색광고에 400만원을 쓴 게 전부다. 기술원 전체 예산의 0.00001%에 해당하는 돈이다. 현장조사에서 문은숙 예비조사위원이 “피해자들이 어떤 광고를 보고 접수했는지 분석한 적 있느냐”고 질문하자 김용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효과 분석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올해 4월 시작된 4차 피해 접수는 23일 기준 3,096명으로, 지난해 3차 접수(752명) 때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기술원의 피해 접수 관련 올해 예산은 1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억원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가습기 문제가 작년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기에 예산 반영이 안 됐다”며 “내년에는 200억원 가까이 증액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현장조사 때 지적을 받은 뒤로는 상담일지를 작성하고 있다”며 “조만간 상담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피해 발굴부터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우원식 특위 위원장은 “현장조사 때 드러난 기술원의 문제점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국정조사 기간 동안 개선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