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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진영대결 솥에서 '대통령 독식'이란 장작 빼야"

입력
2016.08.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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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8일 한국일보 ‘시대정신’ 대담에서 자신의 비전을 말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8일 한국일보 ‘시대정신’ 대담에서 자신의 비전을 말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난 18일 본보와의 대담을 위해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원희룡 제주지사는 날아온 거리만큼이나 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제주도백으로서 경험에서부터 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대선 잠룡 입장에서 준비해온 시대정신까지 관심의 스펙트럼은 무척이나 넓었고, 또한 달변이었다. “가난했지만 공부 하나 잘해서 고도성장시대 모든 특혜를 받았다”고 고백한 원 지사는 그 혜택을 “완전히 연소시켜”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가는 ‘완소남’이 꿈이라고 했다.

-제주도정을 맡은 지 벌써 2년이다. 정치와 행정은 다르다고 하는데.

“국회의원은 여야 주장이 서로 부딪히는 속에서 법안과 예산을 처리하는 등 국가적 이슈를 다룬다. 그만큼 폭이 넓지만 정당정치의 대결 구도 속에서 의사결정이 자기 뜻대로 안돼서 좌절을 많이 느꼈다. 반면 행정은 정확히 주어진 일이 있고 의사결정을 해서 주민들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기 때문에 책임 농도가 강하다. 그런 면에서 보람은 있지만 국회의원 할 때보다 몇 배 더 긴장된다”

-주변에서 제주가 낳은 천재라고 하는데.

“저를 완전히 죽이는 발언이다(웃음).”

-지난 2년 역점을 둔 사업은.

“제주의 자연환경 난개발을 중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성장동력인 외부 투자를 지역경제와 상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의 86세대를 어떻게 평가하나.

“기대가 크다 보니 비판적 평가가 많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운동 경력을 출세수단으로 삼고, 집단패권주의의 면모를 보이거나 갈등을 증폭하는 정치의 틀에 갇혔다는 비판이 있지만 ‘탈권위’와 ‘수평적 소통’ 문화로 가는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고도성장의 혜택을 누렸다고는 하지만 교육 평준화, 민주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시대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는 세대가 우리다.”

-쉰이 넘었다. 자기 정치를 할 때가 됐는데 내년 대선에 출마하나.

“언젠간 출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게 ‘내년이냐’는 질문이라면 국민적 바람에 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돌아봐야겠다. 아직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많이 부족하다.”

-내년이면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이다. 민주화를 넘어선 시대정신은 무엇이라 보나. 원 지사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

“사회적 불평등, 그로 인한 갈등의 폭발, 즉 양극화 해소가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또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실현을 할 수 있는 정당정치와 의회구조, 그리고 그것을 집행하는 정부구조로의 전환, 즉 합의정치로의 전환이 또 다른 과제다. 정부 일방의 아젠다 제시, 51대 49가 아니라 60~70%의 합의로 시행할 수 있는 사회적 대타협이 자리잡아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높지 않다. 우리 정치가 지지집단 결속을 위해 국민을 둘로 갈라놓고 있지 않은가.

“대화와 타협을 정치적 이상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현실 정치는 정반대였다. 편을 갈라 서로 더 공격해야 주도권을 쥐는 정치가 반복됐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도 인종 등 갈등요인이 있었지만 타협의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세력들이 큰 결단을 내리고 국민이 선택하면서다. 정치를 해오면서 최근 이 경계가 가장 허물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구체적 내용과 방향이 무르익었다.”

-보수와 진보를 정치의 기본적 프레임이라고 볼 때, 자신의 이념을 어디에 위치시키나.

“보수가 현상 유지 및 고착화란 뜻이라면 저는 보수는 아니고 매우 혁신적인 사람이다. 대신 혁신의 방향이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시장경제를 발전 원리로 삼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개혁적 우파’라 할 수 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사회정책이나 국가안보에 대한 좌파적 생각은 무책임하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보다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비중이 더 커야 한다.”

-저성장과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나.

“이제 과거의 고성장은 없다. 저성장을 금기해선 안 된다. 내수를 키우고 두뇌와 서비스를 자원으로 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바로 우리 경제의 고도화다. 제조업을 버리는 식의 순진한 생각으론 안 된다. 이제는 재정효과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동산과 교육 등에 의해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지만 목돈이 드는 이런 분야에선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인구절벽도 해결해야 한다. 출산·양육정책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녀를 셋 낳으면 주택 마련엔 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싶다. 또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근육을 대체하는 시대에는 초선진국과 아닌 나라의 차이는 두뇌와 창의성에 있기 때문에 창의적 인구층의 두께를 키워야 한다.”

김호기(왼쪽) 연세대 교수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9일 만나 시대정신을 주제로 대담을 갖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김호기(왼쪽) 연세대 교수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9일 만나 시대정신을 주제로 대담을 갖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청년실업 등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 정치권은 젊은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괜찮은 일자리를 확보해야지 수당을 주고 일자리를 찾으라고 하면, 일자리를 젊은이들이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서울시의 청년수당 같은 경우도 일자리 만드는 것과 직접 연계된 분야에 줘야 한다. 또 돈 있는 지자체만 주면 돈 없는 지자체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라는 얘기인가. 청년 문제, 특히 일자리에 관한 통합적 지원정책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최우선 과제로 놓고 논의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원 대책은 우파의 숙제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외교안보의 시험대에 올랐다. 외교안보 철학은.

“북한 국민은 우리가 흡수·지배할 2등 국민이 아니라 혈육이자 동포로서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우리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인도주의적 지원·교류는 항상 이뤄져야 하고, 거기에 더해 유사 시에 북한 민심이 중국·러시아가 아닌 남쪽을 향하게 해야 한다. 우리 지도자와 국민들은 민족이라는 차원에서 독자 외교를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사드 배치 결정, 어떻게 바라 봤나.

“솔직히 성급했다고 본다. 부연하자면, 사드가 북핵 방어용이라지만 북한이 한국을 겨냥해 대륙 간 미사일을 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북핵에 대응하는 유일하고 충분한 대비책이냐에 대해 토론해야 했다. 미중 대치 구도에서 우리가 휘말리는 것도 문제다. 한미는 사드를 북핵에 한정한 용도라고 말하지만 중국은 엑스밴드레이더 자체부터 자신들의 안보 기밀을 필요 이상 들여다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는 아니다. 다만 정확한 사실관계 정보를 제공하고 국제적 대화와 검증을 거쳐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고 중국에의 악영향은 최소화된’, 찬성할 수밖에 없는 방향임을 설득해야 한다.”

-박근혜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남은 기간 우선 과제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걸고 집권했다. 그것이 되어야 100% 국민통합이 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다 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인데 자기 규정만 갖고 ‘할 만큼 다 했다’고 하면 통합이 안 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인정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있는데 완료를 선언하고 창조경제와 경제혁신 3개년 개혁으로 국가 핵심과제를 전환시킨 건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앞으로 남은 1년 반 가장 큰 이슈가 외교안보적으로 사드다. 정치권도 진영 논리를 앞세운 편 가르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과 후손의 앞날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 등을 포함해 내년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인물을 놓고 전망하는 것은 제 범위를 넘어선 문제다. 2년 전 개헌해야 한다고 책(‘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을 썼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이런 대결정치에선 뛰어봤자 벼룩이다. 87년 체제는 판갈이 해야 한다. 선거·정당 구조를 지역·진영 논리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합의와 타협이 가능한 방향으로 가게끔 해야 한다. 기본권과 지방자치 개헌은 물론이고 ‘메시아’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부터 ‘원흉’이 되는 모순된 권력구조도 바꿔야 한다. 갈등을 증폭하는 진영 대결의 끓는 솥에서 장작을 빼버려야 한다. 국회의원을 뜻대로 물갈이하고 장기판에 졸 부리듯 하는 대통령 독식구도를 깨야 한다. 이런 논의에 한 몸 던져 역할을 하겠다는 대권 주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지지하겠다.”

-지지하겠다는 대권 주자에 본인도 포함되나.

“물론이다(웃음). 이럴 때 아니라고 하면 (언론이) 안 나간다고 쓰면서 (후보군에서) 빼 버리더라.”

-본인은 어느 정도 준비돼 있나.

“집권 전 논리와 집권 후 논리가 근본에서 달라질 부분이 없을 정도로 정직하게 준비돼 있어야 한다. 포퓰리즘적 상황논리는 검증돼 걸러져야 한다. 지식인, 언론, 정치권이 자기 편이니 그냥 밀어붙이고 상대의 옳은 논리조차 공격해선 안 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상대 논리도 얼마든지 빌려 쓸 수 있어야 한다. 실용적ㆍ개방적ㆍ상대적 관점으로 실현가능성을 따져 일관된 정직성에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 집권 후엔 상대 사람도 쓰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걸 투항으로 봐선 안 된다. 어떤 아이디어도 어떤 사람도 다 흡수할 수 있는 능력과 풍토가 보장되는 것, 그것이 집권 준비다.”

-정치인 원희룡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가지고 태어난 것이 없는, 정말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공부 하나 잘해서 고도성장시대에 모든 특혜를 다 받은 사람이다. 오래는 안 했지만 법조인, 국회의원 등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직업에서 일했다. 제가 받았던 그 혜택을 다 되돌려주고 갈 것이다. 그런 완전 연소를 꿈꾸는 ‘완소남’이다. 받은 것을 다 돌려주고 가는 완소남이 제 꿈이고 정체성이다.”

대담=김호기 연세대 교수

정리=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지난 19일 한국일보 시대정신 대담에서 원희룡 지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지난 19일 한국일보 시대정신 대담에서 원희룡 지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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