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22일(한국시간) 리우의 마지막 밤에 엄청난 강풍이 몰아쳤습니다. 가로수가 꺾여나갈 듯 크게 휘고 숙소의 전기와 인터넷이 잠시 끊어질 정도였습니다. 일교차가 크긴 했지만 대회 기간 내내 비교적 맑은 날씨가 이어졌었는데 말이죠. ‘지구촌의 축제’가 끝났음을 알리는 하늘의 신호일까요. 지난 2일 리우에 도착해 올림픽을 취재하며 지면에 미처 싣지 못했거나 인상 깊었던 내용을 묶은 결산기입니다. ‘Rio Bye’의 첫 글자를 따 풀어봤습니다.
R(Ryu seung min)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 종료를 이틀 앞두고 유승민(34)의 당선 전망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다음 날 새벽 1시 대한체육회 관계자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선수위원 선거 규정상 후보의 뱃지가 노출되면 안 되는데 기사에 실린 사진에 아주 작게 뱃지가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승민 위원이 다급하게 사진 교체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본보와 계약한 통신사의 사진이었습니다. 곧바로 사진을 바꿔 큰 문제는 생기기 않았지만 유 위원이 얼마나 세심하게 선거를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작년 12월 대한체육회(KOC) 후보 선정 뒤 일체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선거 관련 내용이 나가선 안 되는데 유 위원은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아예 모든 인터뷰를 거절한 것이죠. 대회 기간에도 자유분방하게 각국 취재진 앞에 선 다른 후보와 달랐습니다. 그의 카카오톡 글귀가 ‘진인사대천명’이었는데 절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하늘의 뜻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겠죠.
I (I can do it)
‘난 할 수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문구가 아닐까요. 남자 펜싱 에페 박상영(21)은 개막 닷새째인 10일 개인 결승에서 10-14로 뒤지다가 내리 5점을 뽑는 기적의 역전극을 선보였습니다. 박상영이 입으로 ‘할 수 있다’를 되뇌는 장면이 전파를 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죠. 현장에 있던 저도 우승은 어렵다고 봤습니다. 준우승 기사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2,1점으로 점수 차가 좁혀지더니 동점에 이어 역전. 한국과 정반대 시차에 기사 송고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는데 역전 찌르기를 보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습니다. 저만 느낀 감정은 아니었겠죠. 이후 사격의 진종오(37)가 권총 50m 결선에서 6.6점을 쏘고도 대역전극을 펼쳤고 남자 탁구의 정영식(24)도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스매싱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박상영의 ‘난 할 수 있다’ 정신이 한국에 좋은 기운을 몰고 온 것은 아닐까요.
O (Olympic Spirit)
“세계 2,3등을 한 건데 한국 선수들은 왜 금메달을 못 따면 우느냐.”올림픽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외신 기자들의 코멘트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에 유독 목매는 한국 스포츠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조금 달랐습니다.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이“ 죄송하다”고 하면 팬들은 “괜찮다”고 화답했죠. 남자 복싱 함상명(21)과 남자 태권도 이대훈(24)은 패한 뒤 승자의 손을 높이 들어 예우를 갖췄습니다. 우승보다 더 빛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근대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텡은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있으며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이다”고 했습니다. 올림픽 정신의 고귀함을 일깨운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B (Bronze medal)
한국이 딴 9개의 동메달 중 1986년생, 만 서른의 동갑인 여자 역도 윤진희와 남자 태권도 차동민에게 눈길이 갑니다. 윤진희는 2008년 베이징 대회 은메달 후 2012년 초 은퇴해 연하 역도후배인 원정식(26)과 결혼해 두 딸을 낳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습니다. 남편의 권유로 2015년 초 다시 복귀해 한때 리우올림픽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이겨내고 다시 시상대에 섰습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한 대회(런던)를 건너뛰고 다시 동메달을 딴다는 건 정말 드문 일입니다. 원정식은 “세계 역도 역사에 이런 기록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차동민은 한국 남자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여자는 황경선이 최초)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정상을 지킨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더구나 그는 8년 전 베이징 금메달 후 4년 전 런던에서는 8강 탈락하며 좌절을 맛본 뒤 다시 재기했습니다. 차동민이 “이번 동메달 결정전이 가장 뜻 깊은 경기였다”고 말한 건 이런 이유일 겁니다. 두 선수의 동메달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Y (Yearn)
“양궁 선수들이 제일 부러워요.”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와 지도자들의 솔직한 속내입니다. 대한양궁협회는 브라질까지 서른 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는 선수들을 위해 비즈니스 클래스를 끊어줬습니다. 선수촌과 경기장을 왕복하는 피로를 줄여주려고 경기장 근처에 별도의 대형 캠핑카도 마련했습니다. 캠핑카 안에는 침실과 휴식 공간은 물론 물리치료실까지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동경하는 건 단순히 좋은 등급의 비행 좌석과 휴게실이 아닐 겁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필요한 걸 지원하는 협회의 관심과 애정이겠죠. 이번 대회 전 종목 석권의 신화를 쓴 양궁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때마다 정의선(46) 양궁협회장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건 언론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고마워서 일겁니다.
E (exercise and sports science)
한국은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금13 은8 동7ㆍ종합5위)을 올렸습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체육과학연구원(KISSㆍ현 한국스포츠개발원) 소속 5명 연구원이 현지에 파견돼 스포과학지원팀을 운영했죠. 이들은 대회 기간 내내 통합 훈련캠프인 브루넬 대학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기술, 영상분석, 심리, 생리, 트레이닝 지원을 도맡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때는 대한체육회가 통합캠프를 운영하지 않았고 단 2명의 연구원만 리우에 왔습니다. 양궁 담당 김영숙 박사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 AD 카드를 태권도 담당 김언호 박사가 물려받았으니 실제 1명만 파견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정반대 시차와 낯선 환경 등 어느 때보다 스포츠과학의 뒷받침이 중요했던 걸 감안하면 아쉬운 판단입니다. 한국은 이번 대회 금9 은3 동9개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금9 은12 동9) 이후 12년 만에 금메달 10개 이상 획득에 실패했고 총 메달 개수도 21개로 1988년 서울올림픽(금12 은10 동11=33) 이후 최소에 그쳤습니다. 연구원을 파견한 양궁(전 종목 석권)과 태권도(전 종목 메달)가 유독 선전했다는 점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일 것 같습니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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