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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따로, 얼굴 따로... 19세기 낡은 사진도 ‘뽀샵’에 오염됐다

입력
2016.08.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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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얼굴과 말을 담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짤방’.
링컨 얼굴과 말을 담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짤방’.

여러 위인과 작가들이 남긴 명언들을 모아두었다는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생전의 그들을 찍은 인물사진 옆에 그들의 말이 함께 편집된 것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강렬했으며, 옆에 적힌 말들은 깊고 지혜로웠다.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글의 말미에 붙은 이 ‘짤방’을 만났다.

진지한 표정을 지은 링컨의 초상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있는 사진과 글을 믿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순간 웃음이 나왔고, 다음에는 조금 아찔해졌다. 나는 헤르만 헤세나 유진 오닐, 네루다, 스타인벡 같은 작가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별 의심 없이 바라보는 사진은 정말 그들을 찍은 것이 맞을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옆에 적혀 있는 말들은 과연 그들이 실제로 했던 것이었을까? 사진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말자는 글을 신문에 쓰고 있는 주제에 인터넷 사진에 ‘낚이는’ 것은 어째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 ‘짤방’을 제작한 이에게 이 코너를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진 옆에 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라고 말하는 그는, 사진과 글이 함께 놓였을 때 갑자기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이 신뢰가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롤랑 바르트는 같은 시대가 역사와 사진을 만들었다고 쓴 적이 있다. 실제로 역사는 사진을 사료로 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사진은 역사를 근거로 해서 자신의 진실성을 주장한다. 역사와 사진은 서로에 기대어 허공에 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짤방’을 만든 이가 수많은 위인들 중에서 하필이면 링컨을 선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그저 심각하게 생겼기 때문일까?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혹시 그는 사진의 역사와 이론을 공부하는 내 동료인 것일까?

몸체 딴 사람인 링컨의 전신사진

링컨은 사진의 역사에서 꽤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열렬한 사진 수집가였으며(그의 컬렉션에는 누드 사진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사진과 함께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농담을 끊임없이 늘어놓아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데 성공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한 소녀의 요청을 듣고 길렀다는 수염과 ‘거친 공화당원 헤어스타일’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가였던 매튜 브래디가 그의 전속 사진가였다.

1865년 링컨의 사진. 노예해방과 남북전쟁 승리라는 역사적 위업에 걸맞게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1865년 링컨의 사진. 노예해방과 남북전쟁 승리라는 역사적 위업에 걸맞게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링컨이 이 ‘짤방’에 잘 어울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역사적으로 대단히 유명한 합성사진의 주인공, 혹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보자. 비스듬히 서서 프레임 바깥을 바라보는 링컨의 얼굴은 익숙하다. 아마 그것은 이 사진이 5달러 지폐에 사용된 링컨의 초상과 동일한 원본 사진에서 따왔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사진 속 그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인물 사진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진 이미지 속의 사내를 링컨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최소한 사진 속 링컨의 목 아래쪽 몸뚱이는 그의 것이 아니다. 몸의 원래 임자는 미국의 일곱 번째 부통령이었던 존 콜드웰 칼훈이다. 칼훈은 링컨과는 반대로 노예제에 찬성했으며, 남부의 분리 독립을 오랜 기간 지지했다. 정반대의 정치적 소신을 지녔던 두 명의 정치가의 육체가 하나로 들러붙어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모습은 기묘하다.

링컨 사진 위조에 쓰인 존 칼훈의 메조틴트 판화. 링컨과 정반대의 정치 노선을 걸었다지만 위대한 링컨을 기리기 위해 그의 몸뚱이가 필요했다.
링컨 사진 위조에 쓰인 존 칼훈의 메조틴트 판화. 링컨과 정반대의 정치 노선을 걸었다지만 위대한 링컨을 기리기 위해 그의 몸뚱이가 필요했다.

역사가들은 두 장의 사진이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찍혔으며, 두 사진이 합성된 것은 링컨이 암살된 이후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링컨의 ‘당당하고 대통령다운’ 모습을 사거나 팔기 원하는 대중적 수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사진을 구하지 못했던 뉴욕의 판화공 윌리엄 페이트는 사진을 복제할 때 흔히 사용되던 메조틴트 판화 기법으로 칼훈의 몸과 링컨의 머리를 붙여서 찍어내 팔았다. 즉 우리는 포토샵이 개발되기 10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19세기 중반의 합성사진을 바라보는 중이다.

포토샵 한참 앞선 사진 조작의 역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초반의 시대는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을 이룬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의 등장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서 사진은 더 이상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쉽게 복제되고 전송되는 정보의 한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포토샵의 보급은 일반인들도 사진이라는 정보를 대단히 쉽게 편집하고 변형하며 교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새로운 현상과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사진을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이들의 대단히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어쩌면 디지털 사진은 이전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현대의 자동차는 단지 말 없는 마차가 아니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는 단순히 더 좋은 전자계산기나 텔레비전이 아니다. 한때 그들은 어떤 유전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새로운 기술과 욕망을 받아들여 교합과 진화를 반복한 지금 그런 흔적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디지털 사진 역시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예전의 사진과는 거의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단서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오래된 사진의 역사와 그것이 지닌 성격을 짚어보는 것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사진들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링컨의 얼굴을 빌어 인터넷의 사진과 글을 믿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꽤 괜찮은 농담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는 링컨의 오래된 합성 사진을 떠올리며 사실 조작 사진의 역사가 인터넷이나 디지털보다도 훨씬 오래된 것이라는 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1865년 매튜 브래디가 찍은 남북전쟁의 영웅 셔먼 장군과 부하들의 기념 사진.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1865년 매튜 브래디가 찍은 남북전쟁의 영웅 셔먼 장군과 부하들의 기념 사진.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진실했던 적이 없다?

낡고 오래된 조작 사진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링컨의 합성사진이 탄생했던 해인 1865년 매튜 브래디가 합성한 또 다른 사진을 보자.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남북전쟁의 영웅인 윌리엄 셔먼 장군과 그의 부하 장군들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프랜시스 블레어 장군 한 명만은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매튜 브래디는 블레어 장군의 자리를 비워둔 채로 나머지 장군들의 사진을 찍고, 다음날 블레어 장군의 사진을 찍어 합성해 넣었다. 인물뿐 아니라 원래 사진에는 없었던 커튼을 집어넣고, 벽지와 양탄자의 윤곽을 살려내는 그의 솜씨는 마치 포토샵의 스탬프 툴처럼 정밀하다. 사진 조작의 기본적인 문법은 이미 능숙하게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셔먼 장군과 그 부하들 사진 원본. 합성된 사진에서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블레어 장군 뿐 아니라 뒤쪽을 장식한 커튼 등도 없는 다소 황량한 분위기다.
셔먼 장군과 그 부하들 사진 원본. 합성된 사진에서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블레어 장군 뿐 아니라 뒤쪽을 장식한 커튼 등도 없는 다소 황량한 분위기다.

사실 링컨이나 블레어 장군의 합성사진처럼 이미지를 건드려 직접 바꾸어놓는 경우는 사진을 사용하여 여론과 의미를 조작하는 방대한 전통의 아주 작고 얕은 지류에 불과하다. 우리는 사진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도 그것을 둘러싼 의미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민간인의 시체를 찍은 사진을 놓고 서로 상대편의 군대에 학살당한 자국민이라고 주장한다거나, 무장한 시민의 사진을 보고 타국의 특수부대라는 식의 일은 사진의 역사에서 아주 빈번하고 흔한 일이다. 탁월한 사진 역사가인 제프리 베첸은 “사진은 조작된 이미지의 역사에 불과하다”고 쓰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사진의 진실성은 무엇이었고, 신뢰성은 어디에 기대고 있었는지를 다시 질문해야만 한다. 초기 사진가들은 사진이 인간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 빛과 광학, 화학에 의해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기계 이미지’라는 점에 열광했다. 그림은 아무리 정밀하게 그리더라도 인간에 의해 편향되고 재해석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고 현상하여 사진을 얻는 과정에 인간의 해석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을 묘사하는 그림과 사진 중 어떤 것에 더 신뢰가 가는가? 단연 사진이다. 특히 사진이 지닌 기계적 자동성이야말로 우리가 사진을 믿어버리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 우리의 믿음과 신뢰야말로 조작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사진은 조작의 대상이 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사진이 진실을 기록한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없다면, 그것을 조작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진을 조작하는 것은 그 믿음을 교란하는 행위다. 디지털 기술과 포토샵은 사진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알게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위기에 처한 것은 사진의 진실성 자체라기보다 차라리 사진의 진실에 대한 낡고 오래된 믿음은 아닐까?

김현호 사진비평가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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