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형사고 가능성 상존하는 셈”
터널 내 사고 끊이지 않고 있지만
긴급전화 없는 터널도 36% 달해
안전 매뉴얼 모두 갖춘 곳은 없어
2. “안전시설 전부 구비는 불가능”
지방도로는 각 자치단체가 관리
규모에 따라 일괄적 적용 어려워
“터널 관리 주체 정부로 일원화를”
터널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터널 내 안전은 사실상 무방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터널 5곳 중 4개 이상은 후속 사고를 막는 차단장치가 없고, 긴급전화조차 갖추지 않은 곳도 수두룩했다.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에 갇힌 한 남성의 생존분투기를 다룬 영화 ‘터널’ 속 재앙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21일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도에 있는 499개 터널 중 408곳(82%)이 차량 진입을 차단하는 설비를 구비하지 않았다. 터널 붕괴나 화재에 대비해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뒤따라오는 차량의 운행을 강제로 정지시켜야 하는데, 대부분 터널은 2, 3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돌발 사고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자동화재탐지기와 비상경보가 없는 터널 역시 각각 256곳(51.3%), 202곳(40.4%)이나 됐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구조장치인 긴급전화를 설치하지 않은 터널도 179곳(3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모든 터널에서 유일하게 갖춘 설비는 소화기 등 소화기구가 유일했다. 국토교통위의 한 전문위원은 “터널 안전 매뉴얼에서 구비토록 한 24개 시설을 모두 갖춘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이들 시설이 대형 사고를 예방하고 추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핵심 장치인 점을 감안할 때 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 가능성이 상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들어 터널 내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11일에는 개통한 지 한달 남짓한 서울 강남순환도로 서초터널 중간 지점에서 달리던 차량에 갑자기 불이 나 19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신속한 차단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뒤늦게 터널 안으로 들어선 차량들은 길게 줄지어 선 채로 한참이나 불안에 떨어야 했다.
14일 전남 여수시 마래터널에서는 졸음운전을 하던 트레일러 운전자가 10중 추돌사고를 일으켜 8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난달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도 관광버스가 차량 5대를 잇따라 들이받아 4명이 숨졌다.
국토부는 관리 주체와 규모가 달라 모든 터널에 안전시설을 전부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터널은 도로의 일부 구조물에 속해 고속도로와 국도는 국가가, 지방도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게 돼 있고, 터널 규모에 따라 설치해야 할 안전시설도 제각각이라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난전문가들은 고속주행용 터널이 많은 우리나라 도로의 특성을 감안해 좀 더 엄격한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차량 속도가 빠른 터널에서 사고가 나면 치명적인 화재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며 “터널 관리 주체를 중앙정부로 일원화해 다양한 유형의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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