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같은 지도자” 약속 지켜
세리 키즈들과 감격 눈시울
태산 같이 버텨온 박세리(39) 감독이 눈물을 쏟아냈다. 18번홀 그린을 벗어나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박인비(28ㆍKB금융그룹)를 끌어안고 “잘했다”는 말 한마디를 간신히 꺼낸 박 감독은 이내 흐느꼈다. 곁에 함께 있던 양희영(27ㆍPNS창호)도, 김세영(23ㆍ미래에셋)도, 전인지(22ㆍ하이트진로)도 눈시울을 붉혔다. 박 감독은 “선수일 때의 기쁨과 지금의 기쁨은 정말 다르다. 지금의 감동이 가장 좋다. 역대 최고의 순간이다”고 기뻐했다.
박인비의 금메달 결실 뒤에는 박 감독의 ‘왕언니 리더십’이 있었다. 때로는 엄한 선배이자 감독으로, 때로는 친언니처럼, 엄마처럼 선수들을 사랑으로 대했다. 양희영은 “박 감독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저도 그분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고 박세리 감독의 존재감을 설명했다.
박 감독은 리우 도착 직후 골프장 인근에 숙소를 마련해 선수들과 함께 지내며 마트에서 식자재를 직접 사와 먹거리를 챙겼다. 최고의 컨디션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매일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등 한식 위주로 아침을 준비했고, 경기 중에는 허기가 지지 않도록 육포 등 간식도 챙겼다.
‘부대찌개’를 박 감독의 최고 요리로 꼽은 양희영은 “매일 아침 식사를 차려주셨다. 오늘 아침에도 샌드위치를 챙겨주셨다”고 박세리 감독의 살뜰한 보살핌에 감사를 전했다. 박 감독에 대한 질문을 받자 눈물부터 흘린 전인지는 “어머니보다 박 감독님께서 잘 챙겨줬다. 생각보다 더 꼼꼼하게 잘 챙겨주셔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감독은 “그건 (선수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됐다”며 겸손해했다.
그는 선수들이 메달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농담을 하며 최대한 편하게 대했다. 후배들이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어떤 마음으로 경기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회 기간에는 ‘최선을 다하자’는 한 마디만 했다. 그는 “후배들이 정말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결과를 떠나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다치지만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말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리우에 입성한 박 감독은 홀로 매일 코스를 돌며 전략을 수립했다. 벙커와 해저드 위치, 그린 높낮이, 그리고 강풍에 대한 공략법을 꼼꼼히 메모했다. 철저한 준비와 풍부한 경험을 살려 ‘감독’ 본연의 역할도 잊지 않았다. 1라운드에서 부진했던 양희영에겐 “스윙 때 다리가 많이 움직인다”고 지적해 2라운드부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줬다.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는 “보기를 해도 괜찮다”고 격려해 박인비를 비롯한 선수들이 자신감 있게 경기할 수 있도록 했다.
박 감독은 리우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언니처럼 의지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선배, 우산이 돼주고 싶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후배들에게 정말 많이 고맙다. 너무 많은 부담을 갖고 대회를 치렀다. 고맙게도 잘해줬다. 감독이란 직책을 후배들 덕분에 얻었다. 감사하다. 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랑하다”고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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