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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동물원, 그곳에서 발견한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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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동물원, 그곳에서 발견한 문명

입력
2016.08.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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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를 메트로폴리스답게 하는 건 “진마오 타워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130대에 하루 유지비만 100만위안(약 1억8,000만원)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20세기 초 서쪽 교외 지역에 경마장과 골프장, 정자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시설들은 1950년대 상하이동물원으로 변신했다. 현대문명의 상징은 마천루가 아니라, 동물원이다.

맞다. 옛날 옛적 한 SF소설이었던가. 외계인이 실험동물로 사로잡은 지구인들을 ‘지성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 풀어준 것이, 바로 우리 안에 갇힌 지구인들이 다른 동물을 잡아 가둬서 키우는 것을 지켜보고 난 뒤였다. 다른 존재를 포획해서 가둬놓고 건강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이국적인 볼거리로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지성의 징표라 여겼다던가. 화려하게 떠들자면 서구 중심, 인간 중심 온갖 환원론을 배격하는 포스트모던한 정치적 올바름의 세계에서, 조금 덜 재수없게 말하자면 반려동물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애정이 넘쳐나는 이 개화된 문명 세상에서, 그 따위를 감히 지성이라 할 수 있을까.

대만 소설가 나디아 허가 런던ㆍ베를린ㆍ파리ㆍ하얼빈ㆍ로마ㆍ타이베이 등 세계 14개 동물원을 돌아보고 쓴 ‘동물원 기행’은 바로 이 얘기를 무너뜨리는 책이다. 서문에서 꺼내는 얘기부터 그렇다. 2014년 덴마크 코펜하겐동물원은 생후 18개월 기린 수컷 ‘마리우스’를 전기총으로 죽인 뒤 사체를 잘라 사자 우리에 던져줬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전적 동질성이 크니 기형 우려가 있어서. 온갖 반대서명에다 ‘차라리 우리가 기르게 해달라’는 호소가 줄이었지만, 동물원은 “기린을 돌볼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사체를 배고픈 사자들에게 던져준 것에 대해서는 “먹이사슬에서 그 어느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고 답했다.

전세계 동물애호가들이 마리우스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으로 울부짖던 바로 그 날, 도축된 돼지는 30만마리요, 과학실험에 쓰인 쥐는 5,000만마리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먼 나라 기린의 죽음 앞에 느낀 분노를 엉뚱한 곳에 풀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집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기린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저자가 마리우스의 죽음에서 문제 삼는 건, 동물원이 아니라 도살장에서 죽였어야 한다는 점 정도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논쟁적일 거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작가라는 신분을 지닌 사람이 그렇게 잔혹할 리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동물원 기행’이니 동물과 여행에 대한 정말 사소한 온갖 얘기에다, 작가답게 동물과 여행을 다룬 온갖 영화와 동화와 소설에 대한 얘기들에다, 또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보니 동물원을 둘러싼 온갖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들이, 때로는 이게 대체 연결되기는 하는 건가, 무슨 맥락인 건가 싶을 정도로 펼쳐진다. 왁자지껄 시장판에 온 것만 같은데 동물원에 간다는 건, 동물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과 현대문명을 보러 가는 것임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아주 매혹적인 글쓰기로.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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