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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을 인정하고, 정념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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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을 인정하고, 정념에서 벗어나라

입력
2016.08.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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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앵 지음ㆍ임희근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316쪽ㆍ1만4,800원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 앱을 지운 적이 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의 화려한 삶을 보기가 어려웠다. 비싼 옷과 이국적인 휴양지, 화려한 식당…. 모든 것이 부러웠다. 마냥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그들에 대한 부러움은, 스스로에 대한 짜증으로 이어졌다. SNS를 훔쳐보며 괴로워하다니 찌질했다. 이 찌질함의 극치는, 찌질하지 않은 척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괴로워하는 것이다. 알렉상드르 줄리엥의 ‘벌거벗은 철학자’는 이 감정의 악순환, 정념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정념(passion)의 어원인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는 고통, 질병, 괴로움과 관련되며, 여기서 파생된 프랑스어 ‘퐈티르(patir)’는 ‘…을 당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정념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의 비틀림을 거침없이 고백한다. 그는 탯줄이 목에 감겨 태어난 장애인이다. 당연히 그의 가장 깊은 결핍은 ‘건강한 육체’다. 친구 Z의 육체를 부러워하는 그는 어느새 Z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보다 못한 주치의가 ‘정념에 관한 논술’을 써오라고 할 정도로 Z를 향한 저자의 히스테리는 극심하다.

저자의 탐구는 곧 내면을 향한 여정이 된다. 그는 “지금 내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 그건 다른 청년들에 대한 질투가 아니라 바로 그 질투를 거부하는 마음”임을 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해법은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곧 고백한다. 잘생긴 청년들만 보면 튀어나오는 말이 “바보 같은 놈!”이라고. 이제 바로 정념을 안다는 것과, 그래서 거기서 벗어났다는 얘기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럴 땐 앞서간 이들의 길을 밟아가야 한다. 저자는 고대 현인들의 방법들을 따라 해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의외로 저자에게 깨달음을 준 이는 요즘 말로 쿨하고 시크한 태도에 어울릴 법한 성 로욜라나 세네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도 뭄바이에서 성 노예로 살았던 여성들과의 만남이다.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여자들에게서 그는 깊은 연대 의식을 느낀다. 마침내 그는 진실에 다가선다. 강력한 정념을 벗어나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함을. “고통의 밑바닥까지 가서 고통을 살고,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겠다며 읊조린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 약함이 불러내는 추한 잔영에 괴로워하며 온 몸을 떨어대는 저자는, 인도 뭄바이의 성 노예 여성이 저자를 위로하듯 똑같이 독자들을 어루만진다. 벌거벗은 독자라면 이 여름 시원할 수 있겠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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