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부모 잃었다’ 한 마디에 TK 지지율 12%포인트 급반등”
이달 초 한 매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8월 첫째 주에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히 반등했다고 보도하며 “국무회의에서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며 여론 악화를 막았다”는 어느 여론조사업체의 분석을 근거로 들었다.
정말 그럴까? 기사에는 근거가 나와 있지 않아 이 조사를 실시한 조사업체의 보도자료를 찾아보았다. 보도자료 역시 “대통령 가족사를 직접 언급한 것이 ‘배수의 진’으로 해석되며 여론의 주목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지율 반등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근거는 빈약했다.
이 여론조사 문항을 보면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해 잘 하는지, 잘 못하는지만 있을 뿐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사드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묻지 않았다. 과학적 근거 없이 막연한 ‘감’으로 추측한 것이다. 이 업체의 보도자료는 이런 경우가 많다.
여론조사란 통계를 다루는 일인만큼 무엇보다 조사 방법과 해석에 과학적 엄밀성이 요구된다. 우리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잘못된 여론조사가 여론을 완전히 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 업체 대표는 4ㆍ13 총선 하루 전인 12일 트위터를 통해 "새누리당 155~170석, 더민주 90~105석, 국민의당 25~35석"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더민주 123석 새누리당 122석 등으로 새누리당의 과반 붕괴였다.
당시 방법론 면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이 자동응답(ARS) 방식의 여론조사였다. ARS 방식은 대다수가 바로 끊어버려 응답률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어 대표성과 정확성이 낮다. 대신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 이 업체는 앞서 언급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도 50%를 ARS 방식으로 조사했다. ARS 방식의 문제가 지적되기 전에는 이 비율이 더 높았다.
반성해야 할 것은 조사업체만이 아니다. 과학적 조사방법으로 엄밀하고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싸구려 ARS조사를 기획 발주하거나 그런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업체가 명성을 얻도록 인용 보도해 준 것은 바로 언론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여론조사를 직접 기획해서 실시하거나 이미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보도한다. 하지만 해당 여론조사가 신뢰할 만한 지 보도 전에 검증하지 않으면 매체의 신뢰도도 함께 떨어진다는 점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요즘 기자는 총선에서 나타난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제대로 된 여론조사 보도를 위한 준칙을 제정하는 ‘여론조사 보도 준칙 포럼’에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여기서 내년 대선부터 주요 언론사들이 연합해 풀을 구성하고 비용을 분담해 과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다. 실제로 그런 구상이 실현된다면, 그리고 그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다른 수준 낮은 여론조사는 자연스럽게 외면 받을 것이다.
순간적인 트래픽을 가장 중요한 수치로 여기는 시대지만 아직도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기사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제안이 아닌가 한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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