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여행 중 전통 향토 음식을 전문으로 판매하거나 또는 동네 허름한 백반 집에 가면 생소한 국거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의외로 서귀포에는 생선이나 해산물로 끓이는 국이 많다. 국의 조리법 또한 간단해 아무것도 섞지 않은 맹물에 생선이나 채소를 넣고 국 간장으로 간을 하는 정도다. 육지의 매운탕이나 맑은 탕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당혹스러워 하는 고객을 종종 보게 된다.
국의 주재료인 생선에 따라 함께 끓이는 채소도 달라진다. 옥돔과 깅이국은 미역을, 갈칫국은 호박을, 멜국과 각재기국에는 배추를 넣고 끓인다. ‘바릇국’이라고 해서 서귀포에서는 해물국을 지칭하는 메뉴인데 보말, 성게, 오분자기, 소라 등을 넣어 끓인 국물이다. 보양식은 아니지만 서귀포의 여름 국물로 별미인 몇 가지 해물국을 소개해볼까 한다.
서귀포의 가장 향토적인 여름 국물은 ‘전갱이’라고 불리는 각재기국이 아닌가 싶다. 감칠맛이 뛰어나며 생선 특유의 냄새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표적인 국거리로 쓰이며 중성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1㎏에 만원 남짓한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에게는 인기가 많다. 어부들 입장에선 수익성이 낮아 전문 고깃배 보다는 고등어 고깃배 등 다른 어종을 잡아 올리는 그물에 섞여 잡히는 경우가 많다. 각재기 세 마리에 어린 배추 한 포기, 붉은 고추 두 개, 마늘 세 쪽, 대파 반 뿌리, 국 간장 두 큰 술에 취향에 따라 소금 간을 보면 된다. 만드는 법도 간단해 손질한 각재기에 배추를 넣고 한 소금 끓인 후 다진 고추와 마늘을 섞어 먹으면 된다. 서귀포 일도 2동에 위치한, 팔순을 넘기신 주인장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면 약간의 된장이 가미된다. 재미있는 점은 각재기의 선도가 떨어질수록 된장의 투입량이 늘어 나는 것 같다. 이 음식도 호불호가 매우 심한데 요리사의 입장에서 보면 비싸지도 않은 간단한 식 재료로 저 정도의 맛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으로는 생소하지만 조림이나 구이로 잘 알려진 생선은 갈치이다. 비늘이 없고 몸 전체가 은빛으로 반짝거려 ‘은갈치’라고도 불리는데 주낙으로 잡으면 은빛이 유지되지만 그물로 잡게 되면 갈치끼리 서로 부딪쳐서 손상이 나 ‘먹갈치’라고 하여 가격도 많이 내려간다. 갈치는 낚아 올리면 바로 죽어 버리기 때문에 선상에서나 먹을 수 있는 횟감이었지만 요즘엔 배 안에 급랭 시설을 갖추어 멀리 완도 근처의 여서도까지 가서 조업이 이뤄진다. 물론 어획량 감소로 13미(10㎏ 한 상자 기준)에 50만원을 호가함에도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육식성 어류로 배가 고프면 제 꼬리를 뜯어 먹기도 하고, 같은 종의 꼬리를 잘라 먹는 습성이 있어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라는 속담도 있다. 갈치는 단백질이 많아 필수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을 고루 함유해 소화를 도와주며 특히, 라이신의 함량이 높아 어린이 성장 발육에 좋다고 한다. 또한 DHA가 많아 동맥 경화나 뇌졸중 같은 순환기 계통 질환에 예방 효과가 있고 혈관 세포도 튼튼하게 해준다고 한다.
갈칫국은 각재기국과 끓이는 방식이 비슷하다. 다만 호박을 넣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다. 여름에는 풋호박을 썰어 넣고 가을에는 늙은 호박을 넣게 되는데 일반적인 맑은 탕과는 달리 조림이나 구이에서 맛볼 수 없는 갈치 특유의 향이 좋다.
우리나라 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중의 하나가 멜이다. ‘멸어’라고도 하며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어 버린다 해서 ‘멸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귀포 해안에 물이 빠질 때가 되면 미쳐 나가지 못한 멜 무리가 현무암 사이 웅덩이에 떼를 지어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토박이들은 어린 시절 웅덩이에 큰 돌을 던져 바닷물과 함께 튀어 나오는 멜을 주웠다고 한다. 한편, ‘멜 한 마리는 어쭙잖아도 개 버릇이 사납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개에게 멜 한 마리를 주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맛있는 멜로 인해 개 버릇이 사나워질까 봐 걱정 된다는 의미이다. 멜 역시 타우린과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하고 철분 등 무기질이 많아 성인병 예방 및 항암 효과가 있고 칼슘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의 두뇌 발달과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고 한다.
크기에 따라 대멸, 중멸, 소멸, 자멸 및 세멸로 구분하는데 해안에서 보이는 서귀포의 멜은 일반적으로 크기가 커서 국이나 조림으로 많이 조리된다. 부드러운 멜회도 별미인데 자리돔과 같이 손질이 까다로워 파는 식당은 많지 않다. 멜국은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어 물을 부어 끓이다 배추를 뜯어 넣고 다시 살짝 끓여 주면 되는데 배추를 넣고 오래 끓이면 배추가 변색이 되어 좋지 않고 멜과 배추는 1대 1 비율이 좋다. 나머지 재료는 각재기국과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멜국을 파는 식당 중에는 각재기국과 멜조림 등을 함께 파는 식당이 적지 않다.
서귀포 향토 음식 중 가장 이색적인 메뉴로 깅이국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해안 현무암 사이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꼬마 게인데 요즘에는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는 애기를 종종 듣는다. 연한 소금물에 담가 깨끗이 씻어 건져 놓은 다음 게를 절구에 곱게 부숴 고운 채에 내려 게즙을 만든다. 깅이와 미역은 1대 1 비율로 사용하는데 깅이 100g 당 물 6컵 정도가 적당하다. 물, 미역, 깅이를 넣고 낮은 온도에서 끓여 내는데 이는 프랑스 요리인 콘소메와 같은 조리 방식이다. 콘소메는 곱게 갈은 육류나 생선을 계란 흰자와 섞어 육수를 부은 뒤 낮은 온도에서 익히는데 계란 흰자 혼합물이 국물의 수면에 떠오르며 불순물도 함께 흡수하여 맑은 수프가 조리되는 원리를 갖고 있다. 깅이국도 육안으로는 곱게 떠오른 깅이와 미역이 보이는데 국 간장으로 간을 해서 맑은 보리차와 같은 색상을 낸다. 맑은 국물에서 예상을 뒤엎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깅이국은 칼슘 성분이 풍부해 다리 아픈 해녀들의 별식이었다고 한다. 전복도 몇 마리 넣어 주고 해장국 대용으로 제공될 때는 청양 고추도 송송 썰어 넣기도 한다.
지난날에 비해 이제는 서귀포의 음식 종류나 조리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식생활의 질도 많이 향상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손이 조금 더 가긴 하지만 물 대신 육수를 만드는 수고가 필요할 때가 된 것 같다. 멜이나 각재기국에는 옅은 멸치 육수를 사용하고 깅이국은 황게와 깅이를 섞어 끓인 육수가 더 낫지 않나 싶다. 갈치국은 비린 내가 적은 생선 뼈를 이용하여 육수를 내도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부 식당들의 노력처럼 전통 향토 음식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야채와 해산물을 가미하여 풍성한 맛을 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서귀포 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 줄 수 있는 전통적인 향토 음식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변화도 발전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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