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미화된다. 여행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일상과 딱 대척점이다. 일상이 쳇바퀴 도는 만큼 여행은 미화된다. ‘아, 그땐 좋았지.’ 왕년을 밥 먹듯 운운하는 쩨쩨한 직장 상사보다 ‘왕년 팔이’의 고수는 바로 여행자다. 그러나 결코 미화할 수 없는 경험도 하나쯤 있다.
브라질 사우바도르에서 카이피리냐(브라질 칵테일의 일종)를 쭉 들이켰다. 마지막 축배였다. 이미 4개월 전에 예정된 프랑스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중남미 여행을 마무리하고, 파리에서 그간 조우한 여행자의 집에 쳐들어갈 참이었다. 여행 후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행의 진미는 여행이 끝난 후에 나온다는 개똥철학을 이들로부터 꼭 확인하고 싶었다.
사우바도르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벌써 프랑스의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습관적으로 짐 검색을 기다렸다. 엑스레이를 통과한 탕탕이 카메라 가방을 열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18kg에 달하는 그의 카메라 장비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마다 긴장감을 감돌게 하는 요물이었다. 웃으면서 가방을 여닫는 것이 일종의 관례이건만 이번엔 달랐다.
“쇼 미 더 룰(규정을 알려달라)!”
탕탕이 웃음기 없이 항의했다. 일부 부품이 문제란다. 카메라를 설치할 때 나사를 풀고 조이는, 시중가 4달러도 안 되는 (쇠도 아닌) 플라스틱 드라이버와 스패너가 국경을 못 넘고 있었다. 그간 이들도 주인 따라 여러 대륙을 건넜다. 15년 떠돌이 인생에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바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왜 사우바도르 국제공항에서만 불법인가? 젊은 검색 요원이 탕탕의 주장에 뒷걸음쳤다. 탕탕의 요구는 더 당당해졌다.
“사장 나오라 그래.”
사장일 리 없는 검색 대장이 탕탕 앞에 섰다. 여자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눈초리, 융통성이라곤 0%도 없을 것 같은 꽉 조인 화이트 셔츠가 첫인상이었다. 옹고집 탕탕은 재차 규정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문제의 도구를 가리키며 “이건 노(No)야!”라고만 했다. 탕탕의 항의가 계속 될수록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격앙되었다. 파릇파릇한 손아래 직원이 지켜보는 와중에 상사인 그녀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러면 나 연방경찰 부른다.”
휙, 그녀가 번개같이 사라졌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걸 직감했다.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카이피리냐의 취기가 훅 올라왔다. 몇 푼 하지도 않는 ‘그깟’ 도구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거구의 연방 경찰이 눈앞에 섰다. 방금 헬스장에서 키운 듯한 이두박근과 190cm 키의 소유자였다. 덜컥 겁을 집어삼킨 나와 달리 탕탕은 계속해서 ‘쇼 미 더 룰!’ 을 반복했다. 경찰의 대응은 결정적이었다.
“넌 비행기 못 타.”
위험했다. 난 다짜고짜 탕탕을 나무랐다. 우리는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하는 약자였다. 지금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사람이다. 난 이미 무릎 사죄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아무리 미안하다고 해도 넌 못 타. 나가. 지금 한마디만 더 하면 체포할 거야. 뿌리다, 넌 탈 수 있어.”
체포와 감금, 국제적 분쟁 등 여러 해괴한 단어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혹 탕탕에게 내가 모르는 혐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체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탕탕을 질질 끌고 대합실로 나왔다. 서로의 뺨을 꼬집었다. 여전히 우린 출국 금지를 당한 상태였다.
브라질 연방 경찰에게 대든 죗값은 늘어난 시간과 비용으로 치러야 했다. 사우바도르 국제공항에서 노숙자 신세가 된 뒤 헤시피로 이동해 하룻밤을 더 보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닿아 기차를 타고 파리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기존 티켓 값의 3배를 헌납했다. 축복받아야 할 나의 생일 역시 창공에 바쳤다. 더 억울했던 건 ‘문제의 도구’가 헤시피 공항에서는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정한다. 탕탕의 잘못도 있다. 그 작은 물건이 ‘왜’ 검색에 걸리는지 몰라도 되었다. 한편으론 탕탕을 옹호한다. 그는 합당한 이유를 물었을 뿐이다. 검색 책임자는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했을 때, ‘연방 경찰이 화났기 때문에 (넌 탈 수 없다)’란 이유를 댔을 뿐이다. 탑승객은 부당한 대우에도 벙어리가 돼야 할까? 연방 경찰을 감정적으로 불편하게 한 죄목도 있단 말인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사건이다. 동시에 깊은 상처도 입었다. 부당한 상황에 능숙하게 응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함께 밀려온다. 9.11 테러가 일어났던 즈음, 24시간 동안이나 JFK 공항에 감금된 프랑스 친구의 이야기에 위안했을 뿐이다. 아랍인처럼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공항은 국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도 같은 국적이기에 평등하고, 국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결정되기에 그만큼 불평등한 곳. 이 일이 있은 후 공항 검색대는 독재정권의 횡포처럼 트라우마가 되었다. 항거하지 말라! 아무래도 공항에서 당한 부당한 처우를 공유하는 카페라도 만들어야겠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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