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육상 5000m 예선
결승선까지 2000m 남긴 순간… 뉴질랜드 햄블린 넘어지는 사고
이번에 다고스티노 쓰러지자… 햄블린이 격려하며 이끌어 완주
“올림픽 정신과 용기 보여준 순간” IOCㆍ언론 감동 레이스 극찬
“어서 일어나, 일어나서 끝까지 뛰자.”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28)은 17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여자 육상 5,000m예선에서 결승선 2,000m를 남기고 트랙에 넘어졌다. 바로 뒤에서 그의 뒤를 쫓던 애비 다고스티노(24ㆍ미국)와 다리가 엉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탓이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4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재촉했다. 손을 내민 선수는 뜻밖에 함께 넘어진 다고스티노였다. 다고스티노의 도움으로 망연자실해 있던 햄블린은 힘을 내 일어섰다.
이번에는 다고스티노가 다시 트랙에 넘어졌다. 무릎에 부상을 입은 다고스티노를 햄블린은 지나치지 않고 부축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다고스티노에게 햄블린은 “조금만 더. 이제 다 왔어”라고 격려하며 그를 이끌었다. 그렇게 두 선수는 서로 챙겨주며 남은 3,000m를 더 달렸다.
16분43초61로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햄블린은 뒤를 돌아봤다. 다리 부상에도 최선을 다해 결승선으로 향하는 다고스티노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다고스티노가 17분10초02를 기록하며 꼴찌로 완주했다. 1위를 차지한 에티오피아의 알마즈 아야나(15분04초35)보다 2분 가까이 늦었지만 둘의 아름다운 완주에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다고스티노를 기다린 햄블린은 그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픈 다리에도 끝까지 달려오는 다고스티노가 진정한 승리자”라며 “그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다고스티노는 경기 후 무릎 통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햄블린은“다고스티노는 올림픽 정신의 상징이다”라며 “우리는 경기 전에 서로 몰랐는데도 그는 기꺼이 (트랙에 쓰러진) 내게 손을 내밀어준 대단한 여성”이라고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메달과 우승을 원하지만, 이기는 것 외에도 소중한 것이 있다”며 “20년 후 사람들이 리우올림픽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다고스티노와 함께 겪은 일을 얘기할 것이다”고 말했다. 햄블린은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경기에서도 트랙을 돌다 다른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지만 끝까지 경기를 마쳐 박수를 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날 공식 트위터에 두 선수의 사진을 올리며 “올림픽에서 항상 승리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출발선에서 서로 전혀 몰랐던 두 선수가 20분도 채 안 돼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됐다”며 “올림픽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이라고 적었다. USA투데이는 “두 선수의 모습은 올림픽 정신과 용기를 보여주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경기감독관은 충돌 과정에 고의성이 없었다고 보고 두 선수 모두 20일 열리는 여자 육상 5,000m 결선 진출을 인정했다. 하지만 다고스티노는 무릎부상이 심해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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