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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훔쳐보기

입력
2016.08.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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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눈’이 있다. 자신을 보는 내면의 눈과 남을 보는 외면의 눈. 내면의 눈은 자기 안 깊숙하게 숨어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추어내고 인정한다. 그 눈은 미래의 ‘위대한 나’로 만들기 위해 과거의 나와 결별시키고 매 순간 나를 수련시킨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내면의 눈’을 발동시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부모나 사회의 압력으로 남 흉내 내기와 부러워하기로 일생을 보낸다.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고유한 마라톤을 경주하는 사람이 목표점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남들이 뛰니까 바쁘게 뛰는데, 왜 뛰는지 모른다. 흉내 내기에 익숙한 사회엔 희망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대상을 획득하기 위해 파괴적이며 절망적인 경쟁만을 할 뿐이다.

우리가 내면의 눈을 수련하지 않을 때, 자신만의 유일한 임무를 잃게 된다. 그리고 ‘훔쳐보기’라는 전염병에 걸린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압도적인 열정을 잃을 때, 우리는 쉽게 한눈을 판다. 너도 나도 모두 훔쳐보기 때문에 그런 행위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하루를 마감하고 새날을 준비하는 저녁에, 우리의 시선과 시간을 강탈하는 몇몇 TV 프로그램들은 ‘훔쳐보기’와 ‘흉내 내기’를 부추긴다. 온 국민이 어린 아이들의 모습, 몰래 카메라에 잡힌 사람들의 당황한 모습,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 유명가수 모창하는 모습을 ‘네모난 마술 상자’를 통해 넋 놓고 훔쳐본다. TV 프로그램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삼은 교양 커리큘럼이다. 이 커리큘럼은 한 대학의 교양과목보다 신중하게 선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는 이웃과 심지어는 자신과 상관없는 외국인의 희로애락을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공감하게 만들어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서 탈출하게 만드는 인생의 가이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소중한 공동체 의식을 가진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TV와 미디어의 원조인 엔터테인먼트가 시작했다. 그것은 매년 도시 한 가운데 상연된 비극 공연이었다. 거의 모든 시민들이 관람하는 이 행사는 시민 의례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인물은 최고 지식인이면서 극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와 미래 지도자를 꿈꾸는 20대 청년 페리클레스였다. 그들은 아테네 시민들과 함께 비극을 관람했다.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배우를 바라봤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의 배우다. 무대에 선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한 가지 임무는 자신의 배역이 무엇인지 깨닫고 몰입하는 일이다. 문제는 자신의 배역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돈과 권력을 거머쥐는 직업이 최고의 배역이라고 배워왔다.

극장이란 영어단어 ‘theatre’의 원래 의미는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보는 장소’다. 이 단어의 어근 ‘thea-‘는 ‘타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모습을 깊이 보기; 자기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깊이 보기’라는 의미다. 아이스킬로스와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시민 개개인의 정신적인 성숙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비극’이라는 내용을 통해 아테네 시민의 교양을 고양시켰다.

배우가 자신의 고유한 배역에 몰입하면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무대 위 배우의 연기를 보는 관객들은 배우와 하나가 되는 ‘신비한 합일’을 경험한다. 이 장면을 숨죽여 보고 있던 관객들은 무대 위 비극적인 주인공이 바로 자신일 수 있다는 공포와 연민에 휩싸인다. 그들이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연극은 자신을 제3의 눈으로 보는 연습이다. 훌륭한 개인과 사회는 다른 사람을 훔쳐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심오하게 관찰하여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당신은 자신의 내면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훔쳐보기에 급급합니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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