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자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저녁 서울 명동거리는 거대한 뷔페식당을 연상시켰다. 번화가를 따라 환하게 불을 켠 노점들이 저마다 다양한 먹거리를 펼쳐 놓았고 쇼핑백을 손에 든 외국인 관광객들은 음식을 사먹거나 구경을 하며 그 앞을 지나쳤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꼽히는 명동에서 이들이 즐기고 느끼고 기억할 한국의 맛은 어떤 것일까.
명동 입구~명동역 노점 84곳 중
한국 음식 파는 노점은 22곳 불과
12곳은 국적 불분명한 먹거리 팔아
“일본 풍 음식이 많은 것 같은데 먹어 보니 맛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명동이 유명하다고 해서 왔지만 한국적인 느낌은커녕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정신이 없었다.” 한국 여행 첫날 명동을 찾은 마리(24ㆍ여, 프랑스)씨는 길거리 음식을 맛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스페인에서 온 샤비에즈 베라데(40ㆍ남)씨 역시 “중국에서 먹어 본 길거리 음식들은 진짜(Genuine)라는 느낌이 드는데 비해 이 곳 음식은 왠지 거기서 파생된 가짜 같다”라고 평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에서 한국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날 남대문로 명동 입구에서 명동예술극장을 거쳐 명동역 6번 출구까지 이어진 번화가의 노점들을 살펴보니 총 84개의 음식 노점 중 떡볶이나 김치전 같은 한국 음식을 파는 노점은 22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62곳은 다른 나라에서 건너왔거나 국적이 불분명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그 중 야끼소바(볶음우동)나 오꼬노미야끼(일본식 빈대떡) 같은 일본 음식 노점이 21곳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이 5곳, 영국 벨기에 프랑스 미국 등 서양(14)과 그 외 아시아(4)음식이 뒤를 이었다. 국적이 불분명한 음식을 파는 곳도 12군데나 됐다.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음식의 원조나 국적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명동은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필수 방문코스다. 이곳에서 ‘한국의 맛’이 실종된 현실은 한국음식을 통해 그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 주고 재방문을 이끌어 낼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여행 중 맛본 독특하고 맛있는 음식의 기억은 또다시 그 나라를 찾게 만든다”며 “가뜩이나 중국풍으로 변해 한국적인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 명동에서 음식마저 우리만의 특색을 잃어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는 “30개국 이상 여행을 다니면서 접한 길거리 음식 대부분은 그 지역 또는 국가만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며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 역시 다른 나라 음식을 흉내 낸 것보다는 한국적인 맛을 느끼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980만명 중 630만명 정도가 명동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6명은 명동 방문
“다른 나라 음식 흉내 낸 것보다
한국적인 맛을 느끼게 해 줘야”
한편, 노점상들은 “손님이 즐겨 찾는 메뉴가 철 따라 유행 따라 변하는 데다 그 주기도 짧아져 한국음식 외국음식 할 것 없이 한 가지 메뉴만 꾸준히 유지하는 게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스테이크를 만들어 파는 노점상 A씨는 “지금 과일 주스 하는 사람들은 9, 10월쯤 되면 메뉴를 다 바꾼다. 나도 주스를 하다가 계절을 타지 않고 주변이랑 겹치지 않는 메뉴로 스테이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인기를 얻은 메뉴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다. 노점상 B씨는 “원래 딸기 모찌(참쌀떡)를 팔았는데 같은 메뉴를 파는 데가 늘면서 장사가 안되더라. 야끼소바(볶음우동)로 바꾸고 나서 장사가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전통적인 한국 길거리음식을 고집하는 노점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30년 동안 떡볶이와 순대만 팔아 온 노점상 C씨는 “떡볶이나 김치전 같은 건 원래 외국인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는 데다 다른 먹거리들이 워낙 다양해지면서 예전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평상시 먹는 흔한 음식이라도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향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먹기 좋고 깔끔한 길거리 음식으로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그래픽=강준구기자 wldma4619@hankookilbo.com
권수진 인턴기자(한양대 철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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