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대상에 오르내렸던 부장판사
모든 의혹 부인하면서 휴직 신청
차량 대금 가족 계좌로 받은 정황
동반 해외여행 등 진경준과 닮아
檢, 포괄적 뇌물혐의 적용 가능성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현직 부장판사와 정운호(51ㆍ구속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금품 거래 의혹 사건이 최근 법조계에 큰 충격을 안긴 진경준(49) 전 검사장의 주식뇌물 파문과 닮은꼴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가 터진 지난 4월부터 로비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김모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가 코앞에 닥친 16일 결국 휴직처리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전날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성형외과 원장 이모(52)씨를 상대로 김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한테서 재판 청탁 명목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집중 조사 중이다. 작년 말 정 전 대표로부터 수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는 올해 3월 김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정 전 대표를 선처해 달라고 담당 재판부에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로비 통로’로 지목된 상태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와 그의 주변에 대한 계좌추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의혹에 대해 ‘법원판 진경준 사건이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부장판사는 2013년 7월 자신의 딸이 네이처리퍼블릭 후원 미인대회에서 1위로 입상한 것을 계기로 친분을 맺기 시작한 정 전 대표로부터 이듬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인지로버를 시세보다 2,000만원이나 저렴한 약 5,000만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가 차량 구입대금을 정 전 대표 측으로부터 가족 명의 계좌로 돌려받은 단서가 검찰에 포착되면서 진경준 사태를 떠올리게 했다. 진 전 검사장은 대학 동창이자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48ㆍ불구속 기소) NXC 회장한테서 넥슨 주식매입자금(4억2,500만원)과 제네시스 차량 구입자금(3,000만원)을 일단 건넸다가 차명계좌로 되돌려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만약 김 부장판사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면 ‘위장 거래’로 무상제공 받은 수법이 정확히 일치한다.
유사한 지점은 또 있다. 진 전 검사장이 김 회장과 함께 동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과 마찬가지로 김 부장판사도 정 전 대표 등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다만 여행자금을 정 전 대표가 모두 부담했는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검찰은 이러한 사실들이 두 사람 간 상당한 친분을 드러내는 정황인 동시에, 정 전 대표가 김 부장판사에게 제공한 ‘보험성 뇌물’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씨를 통한 재판 청탁 즈음에 전달된 금품이 없다 해도 진 전 검사장 사건처럼 ‘포괄적 뇌물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 부장판사는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날 대법원에 청원휴직을 신청하면서 “정 전 대표로부터 부정한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지만, 그 진위여부를 떠나 지속적인 의혹 제기로 인해 정상적인 재판업무 수행이 곤란한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17일자로 김 부장판사에 대한 휴직 인사발령을 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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