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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자, 수상한 이웃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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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자, 수상한 이웃을 만나다

입력
2016.08.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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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은 일상에 감춰진 공포를 스크린으로 끌어내며 관객을 놀라게 한다. 진진 제공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은 일상에 감춰진 공포를 스크린으로 끌어내며 관객을 놀라게 한다. 진진 제공

한 부부가 새 동네에 이사를 왔다.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돌리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 이웃은 안면을 트면 서로 귀찮아지니 굳이 인사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차갑게 대한다. 다른 이웃은 수상쩍다. 반가워하는 듯하면서도 무시하고, 관심을 보이는 듯하면서도 경계심을 드러낸다. 이런 이웃들이라면 친교를 모색하기보다 고립을 택할 수밖에.

그런데 수상쩍은 이웃이 갑자기 동정심을 자극하며 접근해 온다. 아내가 아프다는 둥, 선물로 준 초콜릿이 맛있다는 둥, 키우는 개랑 친해지고 싶다는 둥 여러 이유를 대며 가까워지려 한다. 가끔 공격적이면서도 의뭉스러운 모습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 불명확함 때문에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의 다카쿠라(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야스코(다케우치 유코) 부부가 수상한 이웃 니시노(가가와 데루유키)와 가까워진 이유다.

다카쿠라는 상처를 지닌 전직 형사이자 범죄심리학 교수다. 연쇄 살인범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자부했는데 인질극을 벌이던 살인범을 설득하다가 실패해 큰 부상을 입고 형사를 그만뒀다. 다카쿠라가 새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를 온 것도 과거를 멀리하고 새 출발하고픈 심리가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다카쿠라는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다가 거주 지역 주변의 일가족 실종 사건에 눈길이 간다. 고등학생 딸 하나를 제외하고 아들과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건이었다. 미제 사건을 풀고 싶은 본성이 되살아난 다카쿠라에게 니시노의 행적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니시노는 다카쿠라에게 귀찮게 하지 말라며 협박을 하면서도 친한 척 돌변한다. 까닭 모르게 아내 야스코와 니시노가 가까워진 점이 특히 다카쿠라를 신경 쓰이게 한다. 일가족 실종사건의 뒤를 캐던 다카쿠라는 니시노에 대한 거대한 의문부호가 느낌표로 변하는 걸 직감한다.

영화는 범죄물이면서 공포물이다. 빼어난 자질을 지닌 전직 형사가 끔찍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며 빚어지는 공포가 스크린을 차갑게 만든다. 관객을 갑자기 깜짝 놀라게 하는 급속냉동 방식을 취하는 대신 정서의 기온을 0도와 -1도 사이에서 유지하며 결국 냉각에 이른다. 관객은 추위를 강하게 느끼지 못하다 어느 순간 발이 얼어붙어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크리피’(Creepy·오싹한)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다.

조금씩 옥죄어 오는 공포감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연출력에 크게 의지한다. 기요시는 이미 ‘도플갱어’(2003)와 ‘로프트’(2005) 등 여러 공포영화에서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해 왔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서늘한 정서에 일조한다. 특히 데루유키의 연기는 배우라면 교과서 삼아 복기해 볼 만하다. 서민형 얼굴에 담긴 비정과 음흉과 교활이 섬뜩하다. 18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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