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핸드볼 1승1무3패
1984년 이후 첫 조별리그 탈락
스피드ㆍ기술 앞세운 한국 방식
이젠 유럽 파워에 안 통해
리우올림픽 여자 핸드볼 조별리그 B조 최종전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열린 15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푸투루 경기장. 28-22로 승리한 대표팀의 맏언니 오영란(44ㆍ인천시청)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뒤늦게 첫 승을 올렸지만 앞서 열린 4경기에서 1무3패를 기록해 이미 8강 진출이 좌절된 한국은 이번 대회를 1승1무3패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한국 여자 핸드볼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대회까지 올림픽 8회 연속 4강 진출의 성적을 거뒀지만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오영란
과 우선희(38ㆍ삼척시청)의 ‘우생순’ 신화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심판의 편파 판정 속에서도 은메달을 따 내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감동 스토리 소재를 제공한 주역들이다. 임영철(56) 감독은 세대교체가 진행 중임에도 한국 나이로 마흔 다섯의 노장 오영란을 불렀다. 오영란은 1993년에 처음 대표팀에 발탁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까지 네 차례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뒤 2012 런던 올림픽때는 후배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네가 꼭 필요하다”는 임 감독의 요청에 8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섰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우선희도 임 감독의 부름에 답했다. 우선희는 지난해 11월 출산했지만 5개월 만인 올해 4월 싫은 내색 없이 합류했다.
여자 핸드볼의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다. 1984년 LA 올림픽을 시작으로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뤘고, 본선 무대에서도 런던올림픽까지 8회 연속 4강에 오른 강 팀이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은메달 세 번,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3ㆍ4위전에서 스페인에게 아쉽게 져 4위에 그쳤다.
올림픽 메달권 복귀, 나아가 숙원인 금메달까지 기대했던 여자 핸드볼이지만 실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오영란과 우선희를 재 발탁한 것만으로 여자 핸드볼의 취약한 저변을 드러냈고, 유럽의 상승세와 맞물려 험난한 길이 예견됐다. ‘우생순’의 경험과 열정으로 극복하려 했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임 감독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의 스피드와 기술을 앞세운 핸드볼이 통했는데 이제는 유럽의 파워를 당해내기 어렵게 됐다”며 “어려서부터 체격 조건이 뛰어난 선수들을 육성하는 저변 확대가 시급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늘 초반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힘과 높이 등 체격 조건이 뛰어난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다 보니 체력이 금방 소진됐다. 세계 최강 러시아와의 1차전 경기에서 한때 19-12, 7점 차까지 앞섰지만 25-30으로 역전 당했고, B조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던 스웨덴(세계 19위)과의 경기도 중반 이후 밀리며 패했다. 예선 마지막 고비였던 프랑스전에서도 후반에 약 15분 동안 무득점에 그칠 정도로 힘이 달렸다.
세대교체의 실패 속에 공격의 핵인 센터백 김온아(28ㆍSK)가 2차전 스웨덴과의 경기 도중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프랑스전에서는 심해인(29ㆍ삼척시청)이 경기 도중 발목을 다치는 등 부상 악재도 겹쳤다. 주장 오영란과 선수들은 아르헨티나전을 마친 뒤 눈물의 기념촬영으로 온 국민을 울렸던‘우생순’과 마지막을 고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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