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공터마다 럭비 골대 설치
바닷물 정수해 마시고, 모래언덕 달리며 훈련
‘피지의 히딩크’ 벤 라이언의 리더십도 한 몫
“지금 피지요? 완전히 잔치 분위기죠. 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사실 주한 피지대사도 밤새 럭비 보고 오느라 조금 지각했습니다.”
피지가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12일(이하 한국시간) 주한 피지대사관 관계자는 들뜬 목소리로 피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첫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국민 스포츠인 ‘럭비 세븐(7인제 럭비)’에서 나온 메달이라 더 열광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지각 않던 필리모네 카우 주한 피지대사도 이날만큼은 밤새 피지의 럭비 경기를 모두 지켜보고 오느라 출근이 늦었다”고 귀띔했다.
피지는 12일 리우 올림픽 남자 럭비 결승에서 영국에 43-7로 대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따냈다. 전반전 29-0, 후반전 14-7의 완승이었다. 피지는 조별 예선에서도 브라질을 40-12, 아르헨티나를 21-14, 미국을 24-19로 꺾는 등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했다. 뉴질랜드와의 8강전에선 12-7,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20-5 승리를 거뒀다.
인구 90만의 섬나라 피지가 딴 금메달이라고 해서 ‘기적’이라 하면 곤란하다. 피지는 2015~2016 세계 럭비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등 통산 16번째 정상에 오른 세계 최강자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9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럭비의 ‘컴백’이 빨랐다면 피지의 사상 첫 메달도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럭비는 피지의 ‘국민 스포츠’다. 1874~1970년 100년 가까이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럭비가 보급된 피지에선 어디서든 럭비를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에 축구 골대가 하나씩 있듯 피지에는 운동장 또는 공터마다 럭비 골대가 설치돼 있다. 피지 아이들에게 럭비는 일상이자 놀이다.
그렇다고 피지 대표팀이 럭비를 즐기면서 실력을 키운 건 아니다. ‘헝그리 정신’은 피지 대표팀의 우승 동력이다. 대한럭비협회 관계자는 “피지만큼 지독하게 훈련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면서 그들의 훈련 환경을 소개했다.
피지 선수들의 체력 훈련은 구시대적이다 못해 원시적이다. 훈련 비용이 부족해 바닷물을 걸러 마시면서 훈련하는데, 그 과정이 혹독하다. 모래언덕인 ‘샌드 듄’을 열 차례 정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몸을 푼 뒤에는 자기 몸무게만한 선수를 짊어지고 모래 위를 달린다. 마지막 단계는 자기 몸무게의 두 배 정도 되는 사람을 짊어지고 뛰는 것이다. 대한럭비협회 관계자는 “모래 훈련으로 다져진 피지 선수들의 하체 힘은 전 세계 어느 팀도 이겨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키워 온 럭비 실력과 세계 최강의 기초체력을 갖춘 피지 대표팀도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팀워크였다. 대한럭비협회 관계자는 “3~4년 전만 해도 피지 선수들의 사명감이나 성실함은 최악의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교도관, 호텔 벨 보이, 농부 등 선수들 각자의 생업이 있는데다, 훈련 과정이 너무 힘들어 훈련을 소집하면 제 인원이 모이는 날이 드물었다.
하지만 2013년 영국 출신 벤 라이언(45)이 피지 7인제 럭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벤 라이언 감독은 7개의 프로 구단을 돌며 쌓은 지도자 경력을 바탕으로 피지 대표팀의 팀워크를 완성시켰고, 피지의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라이언 감독은 미국 CNN 월드 럭비쇼와 인터뷰에서 “피지 국민이라면 예상했을 결과였다”면서 “피지 럭비는 에베레스트산과 같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피지는 내가 맡은 팀 가운데 가장 가난했지만, 선수들은 가장 행복해 했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영상] 피지 럭비 맹활약의 비결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